아직 기준치도 없었나-농수산물 유해허용치 설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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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세간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 얘기가 있다. 농장이나 과수원 주인들은 자기들이 시장에 내다 파는 야채나 과일은 안 먹는다는 것이다. 집에서 식구들끼리 먹을 것은 아마 따로 재배하는 모양이다.
실제로 제주도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밑감밭을 찾아가면 안내인은 요즈음 귤껍질을 다로 끓여먹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란다. 비밀은 커녕 공개된 관광소개문의 하나다. 이것이 바로 우리주변에서 먹고 있는 농산물의 유해현황이다.
이러한 농약공해의 심각한 현실을 우리가 지금까지 모르고 지내온 것은 아니다. 우리가 날마다 빼놓지 않고 먹고있는 쌀에서도 농약의 잔류성분인 수은이 발견되고 있고, 그밖에 각종 야채에 묻어있는 농약성분은 아무리 씻어도 적어도 30%정도는 남아있다는 실험결과도 나와있다. 그러나 이러한 끔찍한 현상들이 일종의 관행처럼 행해져왔고 소비자들도 무신경하게 이를 감수하고 먹어왔던 것이다.
이제까지 이를 단속할 기준하나 정하지 못해 속수무책이었고 그러는가운데 여유 있는 사람들은 청정채소니 자연식품이니 해서 이른바 무공해야채와 식품을 비싸게 사먹는 일이 이제 예사가 돼버린 것이다.
정부는 이제 와서 쌀촵상치·배추·딸기촵포도·토마토촵복숭아촵사과 등 8개 품목의 농산물과 고등어촵멸치촵조기 등 24개 수산물에 대해 농약과 중금속 성분의 허용기준을 올해 안에 정하고 이 기준에 맞지 않는 농수산물을 못 팔게 하기로 했다 한다(중앙일보 3월30일자). 이는 매우 때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한 조처라고 생각한다.
농작물의 생산량만 높이기 위해 독성이 강한 잔류성 농약을 지나치게 많이 쓰기 때문에 농작물과 농토자체가 심한 오염에 빠져간다. 함부로 버리는 공장폐수는 강과 바다를 오염시켜 인근 연해의 수산물에도 중금속이 발견된다. 이러한 공해물질은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면 즉시 어떤 증상으로 부작용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소홀히 한다. 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은 있는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체내에 각종 공해물질이 쌓이고 결국은 회생할 수 없는 중증으로 목숨을 잃는 것이 바로 공해병이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최대허용기준이 엄밀하고 정확히 정해져야함은 물론 이를 철저히 지키고 시행할 수 있도록 모든 제도적촵실제적 장치가 완비돼야할 것이다.
검사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시장에 나오는 각 농수산물의 유통경로를 철저히 파악하여 그 원산지를 추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오염된 농산물의 생산자에 대한 제재방법이 강구돼야하며 독성이 강한 농약을 쓰지 않도록 사전 계몽도 철저해야하겠다.
수산물의 경우는 연안해역에 대한 수질검사를 수시로 하여 오염된 곳에 어장을 만들지 않도록 사전 조처를 할 일이다. 사후적발보다는 사전예방이 생산자나 소비자에게 모두 이로운 일이다.
농약의 판매와 사용에 관한 제도적인 개선도 시급하다. 외국에서처럼 농약도 독극물로 분류하여 용도를 분명히 알고 팔아야하며 동시에 적정한 사용법을 숙지시켜야한다. 구미 선진국에서는 이미 사용이 금지된 살충제를 제3세계국가들이 아무런 경계심 없이 사들여 지나치게 남용·오용하고 있다는 살충제구제운동기구(PAN)의 경고를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인체나 생태계에 해가 없는 농약의 수입이나 개발은 무엇보다도 서둘러야할 근본문제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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