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차리고 밥집 해보고…청소년 자립 돕는 한영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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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오감을 필요로 하는 훌륭한 종합교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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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대안학교 ‘영셰프스쿨’을 운영하는 한영미 대표. “단순한 요리법이 아닌 요리의 가치를 가르친다”고 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요리의 교육적 효과를 믿는 한영미(46) 슬로비 대표는 청소년 요리 대안학교 ‘영셰프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영셰프스쿨은 요리로 자립하길 희망하는 17~22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무료로 요리를 가르쳐 주는 곳이다. 2010년부터 매년 10여 명의 학생을 선발해 2년간 전일제로 요리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안학교 ‘영셰프스쿨’ 운영
17~22세 매년 10명 무료교육
요리뿐 아니라 경영 수업도

이 학교의 목표는 ‘취업’이 아니다. 여느 전문학원처럼 자격증 과정도 없다. 1년 차에는 서울 영등포 ‘하자센터’(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에서 직접 밥집을 운영해 본다. 요리의 기본기를 배우고 인문학과 경영 수업도 받는다. 식재료를 직접 농사짓는 과정도 있다. 2년 차부터는 외부로 나가 인턴 실습을 한다. 한 대표는 “학생들은 먼저 자기 밥상을 차리는 방법을 알게 된다. 그다음 다른 사람의 밥상을 차려주는 법을 배우고 요리를 통해 자립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는 특이하게 이름 대신 닉네임을 부른다. ‘라임(한현정)’ ‘오닝(오대걸)’ ‘스윙스(이진석)’ 등 자신이 불리고 싶은 호칭을 정해 서로 불러주는 식이다. 한영미 대표는 ‘그레이스’다. 한 대표는 “선생님과 학생 같은 기존의 호칭은 관계를 한정 짓는다”며 “이러한 관계에서는 창의적인 발상이 어렵다고 생각해 서로 닉네임을 정해 부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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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영셰프스쿨을 거쳐간 아이들은 70여 명. 부모가 없는 시설 청소년, 가정폭력 때문에 상처받은 청소년, 대학 진학 대신 요리사를 꿈꾸는 청소년 등 다양한 아이들이 영셰프스쿨을 졸업했다. 영셰프스쿨 6기 헤이(손성훈)는 “요리가 좋아 지원했던 이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많은 경험을 하면서 단순히 요리의 기술이 아닌, 요리의 더 큰 의미와 가치를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 대표의 본업은 친환경 밥집인 ‘슬로비카페’를 운영하는 일이다. ‘슬로비’는 ‘느리지만 더 훌륭하게 일하는 사람(slower but better working people)’을 뜻하는 말이다. 이곳에서는 농가 직거래로 재료를 공수한다. 그 외 친환경 도시락 판매, 외식 창업 컨설팅 등을 하는 슬로비카페의 연 매출은 10억원에 달한다.

성신여대 조소과를 졸업한 한 대표는 원래 꿈이 큐레이터였다. 미술 전시 기획도 여러 차례 했다. 그러다 1999년 우연히 지인 소개로 하자센터에 합류하게 됐다. 청소년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아이들을 위해 뭔가 해보고 싶은 꿈이 생겼다. “아이들은 금방 달라지더라고요. 교육 과정 중 모의 창업 아이템을 발표하는 과정이 있었는데 한 아이가 독거 노인을 위한 사회적 기업을 구상해 발표했어요. 어른도 놀랄 만한 아이디어였지요. 요리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달라지고 세상이 조금씩 변한다고 느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글=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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