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마음 고요해야 멀리 내다볼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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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본선 8강전 1국> ○·탕웨이싱 9단 ●·박정환 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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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보(169~188)=더 이상 변화의 여지가 없는 바둑은 검토실의 예상대로 흘러간다. 그 말은 곧 대국이 끝날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하변의 패는 팻감 많은 백이 여유 있게 해소했고 흑은 73으로 따내는 패를 악착같이 버텨 대마를 살려냈다(76, 82, 87…△, 79, 85…73). 그러나 그뿐이다. 하변 대마를 살리긴 했지만 전국은 이미 만신창이가 됐다. 중앙 88에 진퇴양난, 더 이상 견딜 재간이 없다. ‘참고도’ 흑 1로 연결해봐야 백 2면 중앙 흑 대마의 탈출은 불가능. 패를 해소하는 것으로 옥쇄를 선언한 박정환은 조용히 돌을 거두었다.

우연히 단순함에 담긴 의미를 찾다가, 촉한의 제갈량이 아들 첨에게 남긴 훈육의 편지 ‘계자서(誡子書)’를 보았다. 86자의 짧은 글이지만 그 안에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가늠할 지혜와 통찰이 담겨 있음을 느낀다. 그 중에서 후대에 널리 알려진 ‘담박명지 영정치원(澹泊明志 寧靜致遠)’, ‘욕심 없이 깨끗해야 밝은 의지 세울 수 있고 마음 편히 고요해야 멀리 내다볼 수 있다’는 문구를 대미로 삼는다. 아마추어로서 프로바둑 최정상의 기량을 거론하는 일은 민망한 노릇이나 마음의 공부쯤은 한자락 거들 수 있지 않겠는가. 188수 끝 백 불계승.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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