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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 영국 탈퇴 막으려다 EU는 껍데기만 남는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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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론조사에선 EU 잔류 지지율이 약간 높은 편이지만 보리스 존슨 영국 런던시장(사진)을 포함한 탈퇴 지지 여론도 만만찮다.

지난 2월 19일 저녁 늦게 영국과 유럽연합(EU)의 나머지 27개 회원국 간에 영국의 EU 탈퇴를 막기 위한 합의가 이뤄졌다. 이제 영국인은 오는 6월 23일 국민투표를 통해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이끌어낸 합의에 따라 EU에 남을지 또는 떠날지 결정하게 된다.

다른 나라 대중영합주의 지도자들도 따라 하려는 유혹 억제하기 힘들 듯

어느 쪽이 되든 캐머런 영국 총리가 이끌어낸 양보의 의미를 유럽 전역의 대중영합주의나 유로회의주의(Euroskeptic) 지도자들이 놓치지 않았다. 하나의 선례가 만들어졌다. 대중영합주의자들이 결의를 다지기 시작했다.

이주자 복지수당 제한으로부터 금융 서비스에 이르는 각종 이슈와 관련해 캐머런 총리가 EU로부터 광범위한 양보를 얻어낸 뒤 대중영합주의 지도자들로선 EU를 협박하려는 유혹을 억제하기 힘들 듯하다. 실제로 영국 관련 합의 이후 EU가 동네북이 돼간다는 결론을 피하기가 어렵게 됐다.

그러나 영국 관련 합의안에 대한 또 다른 해석도 있다. 더 밀접한 통합을 향한 길은 정해졌다는 주장이다. EU가 원래의 목표(유럽 통합)를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면 이제 그것을 달성하는 길은 속도에 차이를 두는 이른바 ‘2중 속도(two-speed) 유럽’ 노선뿐이다. 급행 트랙은 유로존(유로화 사용권) 19개국 또는 더 적은 국가들로 이뤄질 수 있다. EU 프로젝트의 침몰을 막으려 힘쓰는 일종의 연합체인 셈이다.

분명 영국 국민이 탈퇴 쪽에 표를 던진다면 EU는 크게 약화될 것이다. 다른 EU 회원국 지도자는 대부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EU 탈퇴) 투표에서 유일한 희망의 불빛은 어쩌면 대다수 EU 국가들에 더 긴밀하고 통합된 유럽을 택해야 한다는 확신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여러 나라 특히 중부 유럽에서 만연한 유럽통합 회의론 무드를 감안할 때 그것은 몽상에 불과한 듯하다. 국가 주권, 망명·난민 정책, 심지어 외교정책의 개별 국가화가 시대풍조로 부상했다.

하지만 실상 상당수 유럽 정부는 유럽 통합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제공하리라는 점을 이해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어쨌든 그들은 노동·자본·서비스가 자유롭게 이동하는 형식을 갖춘 분할된 유럽으로 충분하다고 믿는다.

그들은 EU가 직면한 복잡한 안보·방위·외교 정책 과제는 신경 쓰지 않는다. 저절로 없어지지 않을 난민사태도 외면한다. 독일을 다시 동지로 끌어들이는 시도와 선전선동 체제를 통해 EU에 나쁘게 말하면 불안정을 초래하려는, 좋게 말해 약화시키려는 러시아에 대처해야 한다는 사실도 나 몰라라 한다. 앞으로 한동안 이주민·난민·인구변화·불안정에 대한 유럽의 대처방식에 중동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사실도 안중에 없다.

이 같은 이슈는 모두 EU 회원국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영국에 대한 양보에 이 같은 문제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캐머런 총리는 EU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거의 모두를 얻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국이 더 긴밀한 통합을 지지하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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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이주자 복지수당 제한으로부터 금융 서비스에 이르는 각종 이슈와 관련해 EU로부터 광범위한 양보를 얻어냈다.

캐머런 총리의 보수파 전임자 중 마거릿 대처는 EU 정부 브뤼셀을 끔찍이 싫어했다. 이번 합의는 영국이 EU 소속으로 최소한의 책임만 진다는 내용이기 때문에 대처가 그를 자랑스럽게 여겼을 듯하다. 캐머런 총리 입장에선 이주자에 대한 제한을 두면서도 정치·경제적 통합에는 아무런 제약 없이 경쟁과 무역에만 초점을 맞추는 EU 회원국이 되는 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EU가 이민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통합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그리고 특히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이번 영국 관련 합의가 EU 미래에 미치게 될 영향을 분명 인식할 것이다. 2017년 대선에 출마하는 프랑스의 극우 국민전선 지도자 마리 르펜은 이미 EU가 캐머런 총리와 이룬 타협을 호재로 삼았다. “(국민전선은) 영국 국민투표 캠페인을 대단히 건강하고 민주적으로 보고 앞으로 그 과정을 예의 주시하며 프랑스의 국민적·국가적 주권을 찾기 위해 단호히 싸워나갈 것”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한마디로 브렉시트의 위협으로 EU를 굴복시켰다. 국민전선도 이제 프렉시트(Frexit) 다시 말해 프랑스의 유로존 탈퇴를 염두에 두고 있어 EU 창설의 한 축인 프랑스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2중 속도 유럽’ 구축을 통해 EU 프로젝트의 궤도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은 영국 관련 합의의 마지막 문장에서 약간의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조약 규정은 또한 특히 협력강화의 확립을 통해 통합 목표를 진전시키려는 활동에 하나 이상 회원국의 불참을 허용한다’고 합의문은 밝혔다. ‘그와 같은 과정은 회원국 별로 다른 통합 과정을 가능케 한다. 통합 과정에 참여를 원치 않는 사람들의 권리를 존중하는 한편 통합을 강화하고자 하는 진영이 계속 일을 추진하도록 한다.’

그러나 ‘이중 속도 유럽’ 구상은 프랑스와 독일이 훨씬 더 긴밀히 협력해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실상 그들은 유럽의 미래, 특히 유로존을 강화하는 방식과 관련된 많은 문제에서 이견을 보인다.

내년 프랑스 대선 이후까지는 정치·경제적 통합에 관한 진전을 기대할 수 없는 데다 독일이 연방 의원을 새로 선출하는 총선을 실시한다. 그때까지는 유럽통합 회의론자들은 시간을 벌고, 통합론자들은 시간을 빼앗겼다.

주디 뎀프시

[ 필자는 유럽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선임 연구원이며 ‘스트래티직 유럽’의 편집장이다. 이 글은 카네기 유럽 사이트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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