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경제학자들도 “샌더스 공약, 동화 같은 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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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현지시간) 미시간주 디어본에서 연설하는 버니 샌더스 미국 민주당 경선 후보. [AP=뉴시스]

“버니 샌더스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건보 개혁에 연 2조~3조 달러 들어”
샌더스 측 “클린턴 쪽 학자들 주장”

 미국의 진보 성향 좌파 경제학자들이 미 민주당 경선후보인 샌더스의 경제공약을 조목조목 비판하기 시작했다고 뉴욕타임스가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동안 샌더스의 공약을 꼼꼼히 들여다보지 않거나 혹은 취급하지 않던 학자들이 ‘샌더스 열풍’이 미 전역을 휩쓸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샌더스의 우군이라고 할 수 있는 ‘좌파 경제학자’들까지 “허황된 공약”이라 목청을 높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가장 문제 삼는 건 ‘샌더스케어’라 불리는 의료보험 체계.

 샌더스는 2014년부터 시행에 들어간 ‘건강보험개혁법(일명 오바마케어)’으로는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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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케어가 대다수 국민의 건강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정부와 기업이 비용의 일부(저소득층은 90%)를 보조해주는 반면 ‘샌더스케어’는 국가가 관리하는 단일 건강보험 체계. 모든 미국인이 소득·연령에 상관없이 보편적 의료보장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료보장은 특권이 아니라 권리”라는 샌더스의 가치관에 따른 공약이다.

 샌더스는 이를 위해 향후 10년 동안 매년 1조4000억 달러(약 1680조원)의 예산이 추가로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물리도록 하는 획기적 소득세 구조 개편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클린턴과 관련 없는 좌파 학자들도 연간 2조~3조 달러(약 2400조~3600조원), 쉽게 말하면 샌더스 주장의 2배는 돈이 들 것이라 일축하고 있다”고 전했다. 내년도 미 예산안 전체 규모가 4조1000억 달러란 점을 감안하면 총 예산의 절반 이상을 ‘샌더스케어’에 투입해야 하는 ‘한심한 재정’이란 지적이다.

 한마디로 ▶공립대학 무상교육 ▶사회보장 확대 등 말은 그럴듯하지만 결국 유럽식 시스템으로 가려면 중산층의 추가 부담이 불가피하다는 게 진보 경제학자들의 주장이다.

 오스턴 굴즈비 시카고대 교수는 “누군가 (샌더스의 공약을) ‘이상적’이라 평한 걸 들었지만 이쯤 되면 ‘마법에 걸린 강아지들이 당첨된 로또를 목에 걸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상황’으로 진화했다 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도 “샌더스가 대통령이 되면 그의 정치적 자본을 교육의 질 향상, 기후변화, 인프라 확충 등 대신 이른바 ‘헛고생’하는 데 소진할 것”이라 우려했다.

미국의 대표적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보건경제학자인 헨리 에런은 “샌더스의 아이디어는 엄청난 호소력이 있지만 현재와 같은 양극화된 정치 구도하에선 ‘동화 같은 이야기(fairy tale)’”라며 “그가 대통령이 돼 거기에 온 힘을 쏟게 되면 정권은 급격히 붕괴될 것”이라 비판했다.

 샌더스 후보의 허술한 경제 인식을 지적하는 지적도 나왔다.

 조 바이든 부통령의 경제 자문을 맡았던 좌파 경제학자 제러드 번스타인은 “샌더스 진영은 ▶경제성장률이 연 5.3%에 달하고 ▶경기가 과열돼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제동을 걸지 않는다는 비현실적이고 ‘희망적 가정’에 입각해 있다”며 “인프라 투자 확대, 보다 효율적인 의료보장, (무상교육이 아닌) 학생들의 빚 경감 등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샌더스 측은 “(뉴욕타임스의 보도는) 클린턴 측 학자들 주장”이라며 “우리도 몇몇 경제학자를 비롯해 130명의 전문가가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반박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클린턴을 공개 지지한 바 있다. 샌더스는 14일 TV에 직접 출연, “중산층 가정이 연간 500달러의 세금만 더 내면 5000달러의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잘라 말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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