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e판결] '가루야 가루야' 공연 기획안도 저작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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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루야 가루야' 체험놀이전

밀가루에 그림을 그리고, 반죽으로 이것 저것 만들어 보기도 하는 체험전 ‘가루야 가루야’.
작가 이영란과 배우 송승환씨가 이끄는 PMC 프러덕션이 손잡고 2005년 런칭한 이 공연은 누적 관람객이 80만명 넘는 히트작이다.

이 공연의 컨셉이 적힌 기획안도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항소심 법원이 내린 답은 “그렇다”였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항소9부(부장 오성우)는 PMC 프러덕션이 ‘가루야 가루야’와 유사한 ‘가루야 OO전’ 등을 진행해 온 A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A사는 PMC측에 2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고 10일 밝혔다.

1심과 2심의 결론은 같았지만 이유는 달랐다.

1심(중앙지법 민사43단독 김선아 판사)은 "A사의 행위는 상도덕과 공정한 경쟁질서에 반하는 것이어서 불법한 행위이지만 저작권 침해는 아니다"고 판단했지만 2심은 저작권 침해가 맞다고 판단했다. 1, 2심의 판단은 체험전의 구성과 내용을 언어로 표현한 ‘공연 기획안’도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저작물인지를 두고 달라졌다.

‘공연 기획안’에는 ‘밀가루 나라’‘빵빵나라’‘반죽나라’‘통밀나라’ 등 4개의 테마방을 어린이들이 순차적으로 돌아가며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기획안이 저작물인지를 두고 판사들을 고민케 한 건 대법원의 판례였다. 대법원은 “저작권의 보호 대상은 정신적 노력으로 얻은 학문과 예술에 관한 사상과 감정을 표현한 창작적인 표현형식이지 사상과 감정 그 자체는 아니다”라고 제시하고 있다.

1심 재판부는 “‘가루야 가루야’의 기획안은 기존의 다른 체험전과 확연히 구별될 정도의 창적성을 갖췄다”면서도 “기획안에는 놀이체험을 어떻게 구현할지 구체적 표현이 없어 기획안은 아이디어 수준을 넘는 독창적 표현형식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식재료인 밀가루를 어린이 체험전의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는 것 자체가 독창적”이라며 “기획안은 4개의 테마방에 대해서도 ‘밀가루 나라’ 등의 이름을 붙여 독특한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2심 재판부는 공연 자체인 ‘가루야 가루야’ 역시 “저작물인 ‘기획안’등 여러 개의 저작물로 구성된 결합저작물”이라고 인정했다.

이어 2심 재판부는 “A사의 ‘가루야 OO전’은 ‘가루야 가루야’를 완전히 따라한 것이어서 PMC 측의 저작권 중 복제권과 공연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각 테마의 방마다 이름만 다를 뿐 체험활동의 컨셉과 내용이 별반 차이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임장혁 기자·변호사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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