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선 다정한 아빠, 집에선 무차별 폭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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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목사이자 수도권의 한 신학대에서 겸임교수로 일하는 아버지 이씨는 두 얼굴의 소유자였다. 그는 여중생인 딸을 때려 숨지게 하고 방 안에 11개월 동안 유기하는 동안에도 학생과 신도들 앞에선 태연하게 강연을 했다.

신학대 겸임 교수, 두 얼굴의 목사
계모와 갈등, 자녀 모두 따로 살아

이씨는 1990년대 국내 유명 신학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을 떠나 ‘신약학’을 전공했다. 모교 기독교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책을 냈을 정도로 능력도 인정받았다. 부천 지역의 작은 개척교회 담임 목사도 맡았다.

하지만 아버지로서는 자격이 없었다. 그는 2007년 독일에서 유방암으로 숨진 전처와의 사이에 1남2녀를 뒀는데 숨진 이양(당시 13세)이 막내다. 이씨는 전처가 사망한 뒤 2009년 12월 자신이 겸임교수로 있는 신학대의 평생교육원을 다니던 백모씨를 만나 결혼했다. 백씨는 초혼이었다.

행복할 줄 알았던 가정은 백씨가 자녀들과 갈등을 빚으면서 붕괴됐다. 2012년 아들(19)이 가출하자 이씨는 그해 큰딸(18)은 지인의 집으로, 막내딸인 이양은 백씨의 여동생(39) 집으로 보냈다. “백씨의 여동생에게 이양과 비슷한 또래의 딸이 있으니 잘 지낼 것 같았다”는 게 이씨의 해명이었다. 이후 이씨와 백씨 부부만 살았다. 다른 자녀들과 연락이나 왕래도 하지 않으면서 이양의 오빠와 언니는 동생의 사망 사실도 몰랐다고 경찰은 전했다.

백씨의 여동생에게 맡겨진 이양은 학대를 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견디다 못한 이양은 가출을 시도했다. 중학교에 입학한 지 2주 만인 지난해 3월 중순에도 가출했다. 그러나 사망 당일인 17일 오전 1시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교사의 손에 이끌려 이씨와 백씨가 살고 있는 집으로 들어가게 됐다.

이씨는 밖에선 다정한 아버지 행세를 했다. 그는 2011년 8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프로필에 손가락으로 ‘V’ 자를 그리고 있는 두 딸의 사진을 올려놨다.

부천=최모란·조한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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