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4차 핵실험] 북 "수소폭탄" vs 국제사회 "아닐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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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화 기상청장과 윤원태 지진관리관(오른쪽)이 6일 서울 대방동 기상청 국가지진 화산센터에서 북한 핵실험에 따른 인공지진파 측정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신인섭 기자]

수소폭탄인가 아닌가. 북한이 6일 성공했다고 주장한 수폭 실험에 대해 의심스럽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북한이 “수소폭탄 실험을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주장한 것과 달리 국가정보원 등은 북한의 주장이 부풀려져 있다고 말하고 있다.

국정원은 이날 오후 “북한이 수소폭탄이라고 하는데, (지진 규모를)측정한 것으로 봤을 때 아닐 가능성이 있다”고 국회 정보위에 보고했다. 국회 정보위 새누리당 간사인 이철우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국정원 보고를 인용해 “지난번 3차 핵실험(2013년 2월)은 7.9㏏(1kt은 다이너마이트 1000개가 동시에 폭발하는 충격), 지진파 규모는 4.9였다”며 “이번에는 6.0㏏, 지진파는 4.8로 더 작아 수소폭탄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더라”고 전했다. 수소폭탄의 파괴력을 감안하면 위력은 수 백t이 돼야 하고, 실패하더라도 수 십t은 돼야 한다는 게 이 의원의 전언이다. 현재까지 파악한 위력만으론 수소폭탄이 아니라는 것이다.

군 당국도 “좀 더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면서도, “자연지진에서 감지되는 L파가 없었고, 북한도 중대발표를 한만큼 4차 핵실험을 한 건 맞다고 봐야 하지만 수소폭탄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정보 당국은 북한의 향후 움직임과 핵물질 포집 등을 통해 보다 면밀한 분석을 할 방침이다.

북한 핵과 미사일 전문가인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증폭핵분열탄을 활용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핵실험으로 발생하는 충격은 암석의 종류나 수분 포함여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면서도 “수소폭탄이라고 한다면 500kt 이상의 충격이 감지돼야 하는데 10kt 안팎의 충격이라면 원자폭탄에 삼중수소나 리튬-6를 첨가해 파괴력을 높인 발전된 원자폭탄 형태(증폭핵분열탄)로 보는게 객관적”이라고 말했다.

◇수소폭탄과 원자폭탄 뭐가 다른가= 정보당국은 북한이 2000년대 후반부터 수소폭탄 개발에 나섰다는 첩보를 확보하고 있었다고 한다. 수소폭탄은 원자폭탄에 비해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어서다. 북한이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해 실전에 배치할 경우 남북간 재래식 무기 경쟁은 의미가 없어질 정도라는게 정보당국의 얘기다.

수소폭탄과 원자폭탄은 플루토늄이나 고농축우라늄(HEU) 등 사용하는 핵물질은 같다. 하지만 이 핵물질을 분열시키느냐, 융합시키느냐에 따라 파괴력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1세대 핵무기인 원자폭탄은 핵물질에 기폭장치를 작동시켜 순식간에 핵분열을 일으킨다. 원자폭탄이 핵분열탄이라 불리는 이유다. 이 때 발생하는 바람과 고온, 방사능이 피해를 가져온다.

1950년대 초 개발된 수소폭탄은 핵물질이 폭발(활성화)할 때 삼중수소(일반 수소보다 질량이 3배 무거움)나 리튬-6를 공급해 핵융합을 일으켜 파괴력을 대폭 강화한 무기, 즉 2세대 핵무기다. 과학자들 사이에선 수소폭탄이 원자폭탄에 비해 수 십~수 백 배 가량 폭발력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 연구위원은 “태양의 활동이 핵융합”이라며 “수소폭탄의 파괴력은 원자폭탄 보다 엄청나지만 핵융합 물질을 만들고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핵분열탄(원자폭탄)에 일부 융합물질을 첨부해 파괴력을 높이는 1.5세대 증폭핵분열탄을 개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정보 당국자는 “북한은 2000년대부터 채취공업성에서 리튬-6를, 화학공업성에서 중수소 제조를 맡았다”며 “10년 가까이 연구해 왔지만 완성하기가 쉽지 않아 증폭핵분열탄 실험을 하고 수소폭탄이라고 발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북한의 의도는 뭔가= 핵실험 위력은 지진파만으로도 즉시 분석이 가능하다. 북한의 공식 발표 직후 국정원이 반박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북한이 수소폭탄 실험을 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의문점이 남는다. 한국 정부가 분석을 잘못했을 가능성은 없을까. 이날 지진파는 한국뿐 아니라 유럽지중해지진센터(EMSC)와 미국지질조사국(USGS), 중국 지진센터에서 동시에 비슷한 위력의 지진파를 포착했다.

수소폭탄의 폭발력을 고려하면 북한의 발표를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수시간만에 ‘들통날’ 거짓말을 왜 한 걸까. 이와 관련해선 5월 당대회를 앞두고 주민들에게 수소폭탄 보유를 강조하되, 대외적으로는 핵위기를 고조시키지 않으려는 차원이 아니냐는 분석이 많다.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은 "지난달 10일 김정은이 수소폭탄을 언급한 일이 있는데, 대내적으로 핵실험 성공소식을 알려 당대회 분위기를 띄우려 한 것같다"며 "대외적으로 긴장을 조성하되 극단적인 상황은 피하자는 차원에서 3차 핵실험 수준으로 실시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김정은의 지시 문건을 공개하고, 중국이나 러시아 등 우방국에 사전통보가 없었던 점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내부적으론 수소폭탄 실험을 했고, 외부에는 3차 핵실험(2013년) 보다 위력이 크지 않으니 대화를 하자는 게 속마음이라는 것이다.

반면 이춘근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수소폭탄 개발에 10여년을 투자했다"며 "시간적으론 개발에 성공했을 수도 있다"고 평했다. 조성렬 북한연구학회장은 "옛 소련 붕괴 후 핵무기 개발에 종사했던 많은 과학자들이 북한에 간 것으로 안다"며 "수소폭탄 제조가 어렵지만 북한의 핵무기 제조 기술은 국제사회의 평가보단 반발짝 내지 한발짝 더 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수·현일훈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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