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여권, 공천권 놓고 이전투구 할 정도로 한가한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새누리당 친박, 비박계 간 계파 싸움에 다시 불이 붙었다. ‘험지 출마론’을 놓고서다. 전국적 경쟁력이 있는 명망가들은 여당 텃밭인 영남과 서울 강남에서 벗어나 어려운 지역에 도전하라는 게 험지 출마론이다. 거명 인사들은 주로 현 정부에서 장관, 청와대 수석을 지냈다. 또 이들이 영남, 강남 지역구에선 국회의원을 한 적이 없어 험지 출마론은 여권에서 제법 주목을 받았다. 유승민 찍어내기, 영남 물갈이와 맞물려 ‘진실한 사람’은 왜 양지만 찾느냐는 반발성 주장이 어느 정도 먹힌 것이다.

새누리당 험지 출마론으로 계파 싸움 시작돼
친박, 비박 서로 “당신들이 험지 가라” 떠밀어
공천권 놓고 분열하는 야당과 뭐가 다른가

 그런 험지 출마론이 지금 여당에선 이전투구 싸움박질의 진앙지다. 친박, 비박계는 “너희들이 먼저 험지에 가라”고 서로에게 삿대질이다. 친박계 홍문종 의원은 김무성 대표, 이재오 의원을 향해 “남의 등을 떠밀 게 아니라 본인이 먼저 험지 출마에 솔선수범하라”고 요구했다. 즉시 비박계 김성태 의원이 “이 정권 최고 실세인 최경환 부총리나 노련한 홍문종 의원 같은 분이 험지에 나가 솔선수범하라”고 반격했다. 라디오 인터뷰 등을 통해 치르는 공중전이 이 정도다. 물밑에선 감정 섞인 험악한 막말이 다반사다. 한마디로 여당 공천권 전쟁이다.

 정작 물망에 오른 대상자들이 외면해 험지 출마론은 제동이 걸려 있다. 김황식 전 총리,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는 험지는커녕 양지라도 출마 의사가 없다는 쪽이다. 조윤선 전 청와대 수석은 “아무 지역에서나 의원이 될 수 있다는 건 국민을 무시하는 부끄러운 발상”이라고 거부했다. 하지만 험지 출마론으로 봇물이 터진 여당 내홍은 단수 추천 등 공천 룰 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가뜩이나 공천자를 내려보낼 선거구는 아직도 깜깜이다. 똑같은 입씨름 끝에 빈손으로 헤어지길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게 현재의 선거구 협상이다. 법정 시한은 한 달 전이었다. 이대로면 대한민국은 며칠 후 새해부터 아예 선거구가 없어진다. 이런 비상한 상황에서 드러난 집권당의 흉한 모습이다.

 입만 열면 민생을 외치던 여당이다. 야당이 내분으로 시끄럽던 얼마 전 황진하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당내 분란도 조정, 통합 못하는 야당이 어떻게 사회 갈등과 이해를 조정하고 대안을 내놓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야당엔 국민과 민생이 안중에 없는 것인지 개탄스럽다”고 비난했다. 매우 일리 있는 지적이다. 친노, 비노 간 계파 싸움으로 유권자의 기대를 걷어찬 게 야당의 지난 1년이었다. 안철수 의원이 당을 떠나 분당 위기에 내몰린 지금도 싸움은 점입가경이다. 물론 공천권이 배경이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에 묻게 된다. 여당은 그런 야당과 도대체 무엇이 다르냐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누리당은 나라를 이끄는 집권당이다. 집권당 내홍은 자칫 국정 마비로 이어진다. 더구나 지금은 입법 비상에 국가 비상사태가 거론되는 엄중한 시기다. 야당과의 싸움, 당·청 갈등도 볼썽사나운데 당내 쌈박질까지 벌인다면 도대체 민생은 누가 챙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