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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정치인은 거짓말쟁이… 기자는 그래서 필요한 존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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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3호 12면

주디스 밀러 1948년 뉴욕시에서 유대인 아버지와 아일랜드계 가톨릭 어머니를 부모로 태어났다. 바너드대(학사), 프린스턴대(석사)에서 공부했다. 77년 뉴욕타임스에 입사, 2005년 퇴사했다. 83년 여성 최초로 뉴욕타임스 카이로 지국장이 됐으며 2001년에는 퓰리처상을 받았다.

역사학자와 기자가 하는 일은 비슷한 구석이 있다. 객관성 유지다. 여러 의견을 치우치지 않고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신뢰받는 언론의 기사는 역사학자에게 1차 자료다. 기자는 역사학자의 ‘자료 수집 요원’이다. 기자에게는 취재원이라는 정보 제공자가 있다. 역사학자처럼 기자는 취재원들이 제공하는 상반된 정보를 비교·검토해야 한다. 또 신부가 고해의 비밀을 지켜야 하는 것처럼 기자는 취재원의 신원을 보호해야 한다.


주디스 밀러(67)는 두 가지 이유로 언론학 교재의 단골 인용 사례다. 2005년 플레임게이트(Plamegate)에서 취재원을 공개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거부해 법정모독죄로 85일간 수감됐다. 언론자유를 수호한 ‘언론계 잔다르크’다. 하지만 그는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에 대한 취재원들의 편향된 정보를 바탕으로 쓴 기사들 때문에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는 극단주의 이슬람의 위험성을 최초로 경고한 기자다. 역사와 언론, 중동 문제 등에 대해 묻기 위해 아리랑TV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밀러를 만났다.

1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밀러가 최근에 출간한 『이야기: 어느 기자의 여정』의 표지. 2 밀러가 2005년 6월 29일 워싱턴DC의 미국 연방지방법원을 나오고 있다.

-역사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 “‘거짓 이야기(false narrative)’를 피해야 한다. 역사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생각은 거짓 이야기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들의 거짓말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야만 했다’는 거짓 이야기로 당선됐다. 이 슬로건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 미국 정치, 저널리즘에 대해 수많은 신화가 있다.”


-언론인은 어떤 의미에서는 역사가인가. “그렇다. 우리는 역사의 초고를 쓴다. 문제는 미국 기자들 대부분이 자유주의나 민주당에 자신의 정체성을 둔다는 점이다. 그들은 보수파 대통령을 신뢰하지 않는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만약 그가 보수 대통령이었다면 모면할 수 없었을 일들로부터 무사히 빠져나갔다. 진보·보수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극단주의는 역사상 모든 종교와 모든 정파에서 나타났다. 극단주의에는 독점이 없다. 언론은 극단주의의 등장을 경계해야 한다.”


-그렇다면 보수·진보 모두가 인정하는 국정 역사 교과서 마련도 좋은 일인가.“공식적인 역사 해석을 국민에게 강요하는 것은 나쁜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공식 역사는 특정 정치세력이 잇속을 차리는 수단일 뿐 아니라 종종 틀리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어떻게 봐야 하나. “미국에 참극이었다. 침공 그 자체나 침공 결정이 아니라 전쟁 수행방식 때문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이라크를 방문한 2010년의 이라크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이었다. 2011년 ‘우리가 여기에 영원히 머물 수는 없는 법’이라며 미군이 철수하자 이라크는 내란에 휩싸였다. 독일·일본·한국의 경우를 보라. 미군이 싸우지는 않더라도 있는 게 나은 경우가 있다. 미군은 이라크에서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역사와 지정학적인 견해를 무시했다. 그의 전략은 달랐고 그 결과 대혼란을 초래했다. 언론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을 차별적으로 대한다. 오바마에 대해 덜 회의적이다. 이중 잣대가 싫다. 모든 정치인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모든 정치인은 방식은 다르지만 모두 거짓말을 한다. 기자가 할 일은 그들이 어떻게 거짓말을 하는지 서술하는 것이다.”


-지금 이 인터뷰에서 거침 없는 ‘인용문’을 여럿 쏟아내고 있다. “(웃음) 나를 봐라. 골칫거리를 자초한다. 내게 늘 있는 일이다.”


-당신을 영웅시하는 사람도 많지만 비판도 있다. “이라크 전쟁 이전에 많은 기자가 대량살상무기(WMD)에 대해 비슷한 이야기를 기사화했다. 하지만 콕 집어 나를 전쟁을 부추긴 사람으로 지목한다. 왜일까. 첫째, 나는 가장 영향력 있는 뉴욕타임스 기자였다. 둘째, 나는 사담 후세인이 악인이며 누군가 그를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셋째, WMD가 테러 국가이건 독재자이건 나쁜 사람 수중에 있으면 안 된다고 우려했다. 그들이 무고한 사람들을 대량 학살하기 위해 WMD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내가 여성이기 때문이다. 남녀평등이 엄청나게 진전했지만 힐러리 클린턴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여성은 분열을 초래하는 인물로 인식된다. 여성에게는 다른 평가 기준이 부과된다.”


-다른 지역이나 경제?문화처럼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었는데 왜 중동인가. “중동이 나를 선택했다. 프린스턴대 석사과정 학생이었을 때 처음으로 중동에 갔다. 주택 사정에 대한 논문을 쓰기 위해서였다. 중동과 사랑에 빠졌다. 전형적인 미국인들은 나이브(naive)하다. 나 또한 이렇게 생각했다. ‘아랍-이스라엘 문제가 뭐가 힘들다는 거야. 한자리에 모여 앉아 이성적으로 대화하고 타협하면 해결책이 나오는 거 아냐?’ 내 기자 생활 전체는 중동 문제가 왜 그토록 해결이 힘든지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강력한 유대인 로비 때문에 미국이 수렁에 빠지는 건 아닌가.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태도에 대해 오해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대인들이 세기 때문이 아니다. 미국이 이스라엘과 가까운 이유는 이스라엘이 이 지역에서 유일한 서구식 민주국가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좋아한다.”


-당신은 보수인가 진보인가. “어느 쪽도 아니다.”


-양쪽에서 공격받을 때 힘들지 않나. “괜찮다. 나는 내 도덕적·정치적 사고의 틀이 편안하다. 나는 낙관적이고 행복한 사람이다.”


-저널리즘의 미래를 어떻게 조망하는가. “누구도 인터넷 시대 신문의 수익모델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이 우려된다. 다른 우려는 미국 언론이 유럽 언론처럼 돼 가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 언론은 정치적 입장 표명이 일반적이다. 미국에서도 언론의 객관성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의심받고 있다. 매우 위험하다. 언론은 100% 객관적일 수 없기에 더욱더 객관적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미국 대선은 어떻게 될까. “현 단계에서 예측을 내놓은 사람은 바보이거나 여론조사 회사 관계자다.”


-새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어떻게 나올까. “더 강경한 정책을 추진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정책은 그의 여러 정책 중에서도 가장 큰 논란거리다. 많은 사람이 그의 전략 부재를 비판한다. 나는 그에게 전략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총을 쏘지 않도록 중동으로부터 발을 빼는 것이다. 사실 미국인들에게 굉장히 인기 있는 전략이다. 그의 정책은 또 대결보다는 관여(engagement)를 선호한다. 역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정책이다.”


-역사는 오바마의 유산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엇갈릴 것이다. 또 공화당의 주장보다는 더 긍정적인, 민주당의 주장보다는 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것이다.”


-한국 독자들에게 할 말은. “한국은 놀라운 나라다. 다시 오고 싶다. 중동이 아니라 한국을 전문 분야로 선택할 걸 그랬다.”


김환영 기자 kim.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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