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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The New York Times

미·중의 태평양전쟁, 이제 시작일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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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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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윈체스터
언론인

미 군함이 중국 인공섬 해역에 진입하면서 터진 남중국해 ‘치킨게임’은 길고도 먼 전쟁의 서막에 불과하다. 태평양에 대해 중국 정부가 수십 년 전부터 구상해 온 계획이 실행에 옮겨졌기 때문이다. 태평양은 더 이상 미국의 앞마당이 아니라 전 세계에 개방된 공해며, 어떤 국가도 독점적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중국의 목표다. 이런 중국의 입장에 대해 미국이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국제질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금 중국 해군은 베이징이 태평양 어느 곳이든 병력을 배치할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래 태평양에서 미국이 해 온 일들을 자신들도 똑같이 하겠다는 뜻이다.

 미 해군이 1990년대 초반 필리핀 수비크만과 클라크 기지에서 철수하자 남중국해에는 커다란 힘의 공백이 생겼다. 이에 중국은 난사군도를 비롯한 이 해역의 섬들을 은밀하게 점령해 가며 공백을 메워 왔다. 중국의 점령 작전은 놀랄 만큼 교묘하게 진행됐다. 섬은 하나하나씩 개별적으로 중국 손아귀에 들어왔다. 먼저 불도저가 들어와 전파탐지기를 설치하면 이어 시멘트 시설물과 등대가 들어서는 식이었다. 이런 변화는 눈에 띄지 않게 극도로 조용히 이뤄져 충돌을 최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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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섬들을 접수해 가는 동안 미국은 군사적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에야 태평양 전체가 중국의 영해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부랴부랴 대책 수립에 나선 것이다. 이제 미국의 서태평양 패권은 큰 위험에 처했다. 미국 군함들이 오랜 세월 태평양에서 보장해 왔던 항행의 자유 또한 위협을 받게 됐다. 이렇게 되자 미국은 위험한 방안을 선택했다. 미사일 구축함 라센함을 중국 인공섬 해역으로 보낸 것이다. 중국 정부는 미국대사를 소환해 항의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미국과 총격전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상대방을 겁주기 위한 외교적 블러핑이겠지만 미국이 문제의 싹을 미리 차단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미국의 외교정책은 임기 4~8년의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변하지만 중국은 장기적 전략을 가지고 노련하게 게임에 임한다. 이것이 문제의 원인이다. 남중국해 사태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중국은 건국 100주년인 2049년까지 서태평양을 장악한다는 원대한 꿈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그 전략의 중심엔 중국 영토를 보호하고 국력을 투사하기 위해 설정한 가상의 해상 방위선 세 개가 있다. 중국 해안과 근접한 제1 도련선(島鍊線)은 일본 남쪽 해역과 인도네시아 자바섬까지 뻗어 있다. 제2 도련선은 러시아 캄차카 반도와 파푸아뉴기니를 잇는다. 이어 제3 도련선은 미국 알래스카의 알류샨 열도부터 하와이를 거쳐 뉴질랜드까지 이어진다.

 중국은 34년 안에 이 세 개의 해상 방위선을 확보해 자신들의 앞마당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제1 도련선 근해에선 이미 러시아 항공모함을 개조해 만든 중국 항모 랴오닝함을 목격할 수 있다. 중국의 조선소들에선 이렇게 거대한 항모와 군함들이 여러 척 건조되고 있다. 시험 항해도 이미 개시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 알래스카를 찾았을 때 중국은 인근 베링해에 구축함 다섯 척을 보란 듯 출동시켰다. 2020년에는 호주 북부 해안에서도 중국 항모 전단을 보게 될 것이다. 이어 2040년엔 미드웨이 제도와 통가, 2049년엔 하와이 근해에서 중국 전함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진주만에 위치한 미 태평양 함대 본부에서 중국 함정이 보인다면 미 해군은 경악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미국에 정말 위협스러운 상황일까. 중국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모든 나라에 개방된 공해에서 자국의 존재를 알리고 동등한 권리를 누리기 위해 힘을 투사하고 있을 뿐이란 게 중국의 입장이다. 과거 서구 열강의 침탈로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하는 게 중국엔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중국에 대해 해리 해리스 미 태평양 함대 사령관은 주먹을 쳐들었다. 지난주 베이징에서 중국군 장성들과 만난 그는 “라센함을 비롯한 미 전함은 앞으로도 남중국해에서 초계활동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못박았다. 해리스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발언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은 미 군함의 초계 항해를 도발행위로 간주한다. 따라서 해리스는 그런 적대적인 발언을 하기보다는 항행의 자유가 침해돼선 안 된다는 원칙을 강조하는 것이 더 현명했을 것이다. 중국은 항행의 자유를 반대한 적이 결코 없다.

워싱턴 강경파는 미국이 군사력을 더욱 증강하고 목소리를 높여야만 중국을 진정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미국이 의도하지 않았던 중국과의 충돌 가능성을 심화시켰을 뿐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하나만은 확실하다. 거대한 태평양 지역의 역사가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중국의 상승세는 멈출 수 없다. 평온한 바다(pacific ocean)인 태평양에서 중국이 비(非)평화적으로 돌변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미국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사이먼 윈체스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