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정원, 국가기밀 맡을 자격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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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출돼서는 안되는 국정원 본부 실.국장급 간부 22명 전원의 사진이 공개된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청와대의 보안의식 불감증이 중증에 달했으며, 국정원의 업무기강이 풀어질대로 풀어져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질타를 받아 마땅하다. 청와대와 국정원이 이럴진대 국민은 누구를 믿고 발을 뻗고 잘 수 있겠는가.

이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우선 청와대가 그런 사진을 인터넷 신문에 내준 과정이 이해되지 않는다. 오마이뉴스의 요청으로 사진을 제공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국가의 핵심기관인 청와대와 국정원 관련자료가 청와대 내부의 검토 한번 거치지 않은 채 대통령 전속사진사에 의해 외부로 나갈 수 있다는 말인가.

청와대의 보안시스템에 큰 구멍이 뚫려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국정원 측에선 행사를 취재하러 간 사진기자단 등에 "이런 사진은 찍어서는 안된다"고 사전 보안교육까지 했다고 하니 이를 귓등으로 흘려들은 청와대 직원들의 실종된 보안의식에 기가 막힌다.

국정원은 정보기관의 특성상 직원의 신변과 정보수집의 기밀성 등을 보호하기 위해 국정원장과 차장급 등 정무직을 제외한 직원들의 사진과 직책은 비밀로 하도록 내부 보안업무 관리규정을 두고 있다. 사문화된 규정이 아니라면 사진공개로 신원이 노출된 간부들에 대해 국정원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

사진이 오마이뉴스에 40여시간 게재돼 있었는데도 국정원이 이를 발견하지 못한 것도 한심하다.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사진을 넘겨받을 때 어떤 주의사항도 듣지 못했으며, 게재된 이후 국정원으로부터도 삭제 요청을 받은 바 없다고 한다. 정보의 보고이면서 북한을 포함해 세계 각국의 선전장이기도 한 사이버공간을 제대로 점검하지 못한 데 대해 국정원의 업무기강 해이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뒤늦게나마 정부기관의 보안시스템과 업무기강을 재점검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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