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프랑스의 옹고집?'…교황청 거부 동성애자를 대사로

중앙일보

입력

바티칸 주재 프랑스 대사가 적어도 내년까지는 공석(空席)이 될 듯하다. 프랑스 정부가 지명한 대사를 바티칸이 거부했는데도 프랑스가 계속 고집하던 와중에 벌어진 일이다. 문제의 인물은 동성애자인 로랑 스테파니니 대통령 의전수석이다.

외신들은 11일(현지시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임기가 끝나는 2017년까지 새 대사를 임명하지 않고 교황청 주재 프랑스대사관 2인자인 프랑수아 자비에 티예트에게 대사직을 수행하도록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대선 결선 투표가 5월에 있으니 1년 반 이상을 빈자리로 두
겠다는 의미다.

이런 일은 올랑드 대통령이 올 1월 스테파니니를 대사로 임명한 게 계기가 됐다. 통상 외교사절로 임명하기 전 상대 접수국에 이의가 있는지 조회하는 ‘아그레망’을 거치지 않은 채 임명 사실이 공개됐다.

바티칸은 동성애자인데다 협의 절차가 미비했다는 점에서 불쾌해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3년 동성애자들을 향해 “내가 어떻게 그를 심판할 수 있겠느냐”며 포용적 태도를 보이긴 했으나 동성애 자체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기본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바티칸은 거부 의사를 침묵으로 전했다.

지난 4월 이런 사실이 공개됐다. 바티칸과 프랑스 간의 신경전이 이어졌다. 그 무렵 프란치스코 교황은 스테파니니를 바티칸으로 불러 접견했다고 한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개인적인 일로 반대하는 게 아니다. 바티칸의 동의를 받지 않고 발표한 데 대한 반대”라고 설명했다. 스테파니니는 2001년부터 2005년 사이 바티칸 주재 외교관이었다.

결국 올랑드 대통령은 최근 새 인물을 임명하느니 차라리 공석으로 두겠다는 결정을 했다. 일부 언론은 “올랑드 대통령이 물러난 것”이라고 분석했지만 “강경 대응한 것”(더타임스)이란 해석도 있다. 교황 전문가인 프랑스 역사학자 필리프 르빌랭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동성애자에게 보이는 열린 자세와 대사 접수 거부에는 모순이 있다”고 말했다 올랑드 정부는 앞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조치로 바티칸과 갈등을 겪었다.

프랑스·바티칸 사이에선 과거에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올랑드 대통령의 전임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바티칸이 동성 파트너가 있는 사람을 대사로 받아들이지 않자 바티칸의 프랑스 대사 후보를 퇴짜 놓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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