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표준은 싸움의 룰과 같은 것 … 먼저 차지해야 수출 전쟁서 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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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국제 표준을 선점해야 총성 없는 수출 전쟁터에서 손쉽게 이길 수 있습니다.”

 지난 7월 취임한 제대식(55) 국가기술표준원장(사진)은 “보호무역 장벽을 허물기 위해서라도 국제 표준을 선점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자유무역협정(FTA)이 가속화하면서 까다로운 기술규제 같은 ‘비관세 장벽’을 통한 신(新) 보호무역주의가 확산하고 있어서다.

 예를 들어 중국이 자국에서 많이 나는 자원을 바탕으로 배터리를 만드는 방식을 국제 표준으로 만들 경우 그 자원이 없는 나라에 보이지 않는 기술 장벽을 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표준 전쟁’에서 성공한 대표 사례가 한국이 주도해 만든 ‘MPEG’(동영상·오디오 압축 표준)다. MPEG를 개발한 덕분에 정보기술(IT) 강국인 한국은 스마트폰·디지털TV·DVD플레이어 등을 수출할 때 동영상을 구현하는 방식까지 로열티를 받는다. 그는 “표준은 ‘싸움의 룰’과 같다. 남이 만들어 놓은 룰에 따라 싸우는 것과, 직접 만든 룰에 따라 싸우는 건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국가기술표준원은 국내 기업의 든든한 표준 지원군이다. 그는 “일반인에겐 생소하지만 표준원은 표준을 만들어 시험·인증하고, 잘 만든 표준을 국제화하고, 경쟁국에서 국제 표준을 따르지 않을 경우에 대응하는 등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산업연구원은 표준이 매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의 0.8%, 돈으로 환산하면 10조4000억원의 경제 가치를 창출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제 원장은 용지나 볼트·너트의 규격, 전압의 단위, 신호등까지 일상생활 곳곳에서 표준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도 일반의 관심이 떨어지는 점을 아쉬워했다.

 “우리 기업 기술력은 세계적으로 우수하지만 이 기술에 날개를 달 수 있는 표준에 대한 참여가 떨어집니다. 국제 표준화 회의가 열리면 선진국은 기업인 참여 비중이 70%에 달하지만 우리는 20% 수준에 그칩니다.”

 마침 162개국 표준 전문가들이 참가해 표준화 전략과 비전 등을 논의하는 ‘표준 올림픽’ 격인 국제표준화기구(ISO) 총회가 14~1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다. 한국이 ISO에 가입한 지 52년 만에 처음이다.

 그는 “ISO 총회 개최를 통해 국민 기업이 표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표준화에 적극 참여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표준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제2, 제3의 ‘KS마크’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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