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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줄 과일 들고 귀가하던 70대 노인 뺑소니로 숨져

중앙일보

입력

몸이 불편한 아내를 위해 과일을 사들고 귀가하던 70대 노인이 뺑소니 차량에 치여 숨졌다.

30일 광주광역시 북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28일 오후 8시30분쯤 광주시 북구 태령동의 한 도로에서 김모(72)씨가 1t 트럭에 치였다. 김씨는 목격자 신고를 접수한 119구급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진 뒤 다시 대학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지만 29일 오전 1시쯤 끝내 숨졌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몸이 아픈 아내에게 주려고 광주광역시 각화동 농수산물공판장에서 과일을 사들고 귀가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 사고 현장에서는 김씨가 들고 있던 검은색 봉지가 발견됐다. 김씨가 아내를 위해 산 포도와 바나나·식빵이 든 봉지였다.

월남전 참전용사로 10년 전 퇴직한 뒤 현재는 전남 담양군 수북면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던 김씨는 20여 년 전부터 빈혈과 천식 등으로 몸이 좋지 않은 아내를 위해 종종 광주로 나가 먹거리를 사곤 했다. 집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나와 담양과 광주의 경계 지역인 사고 현장 주변에 주차한 뒤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농수산물공판장을 오갔다.

사고 당일에도 광주에서 장을 본 김씨는 시내버스를 타고 태령동 버스정류장에 내린 뒤 오토바이가 세워진 맞은편으로 가기 위해 도로를 건너다가 차에 치였다. 김씨는 사고 1시간 전에는 아내의 전화를 받고 “당신이 좋아하는 과일과 빵을 사들고 집에 가려는 중”이란 말을 남겼다고 경찰은 전했다.

사고 직후 김씨에 대한 별다른 조치 없이 달아난 트럭 운전자 김모(50)씨는 다음날인 지난 29일 오전 2시30분쯤 담양군 담양읍 자택에서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경찰은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사고 현장 부근 폐쇄회로TV(CCTV)를 분석해 뺑소니 차량을 특정했다. 트럭 운전자 김씨는 면허 취소 수치인 혈중 알코올농도 0.119% 상태로 운전하던 중 길을 건너던 행인을 미처 발견하지 못해 사고를 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특가법상 도주차량 혐의로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광주광역시=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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