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카드 공제 확대 ‘무늬만 혜택’ … 13월의 울화통 재연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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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서울 마포구에 사는 40대 회사원 김명호씨는 올해 초 연말정산만 생각하면 짜증이 난다. 카드 사용액을 입력하고 계산하는 과정이 난수표를 연상시킬 정도로 복잡했기 때문이다. 카드를 더 쓰면 혜택을 준다고 해 몇 시간 끙끙거리며 자료를 입력했지만 얼마나 소득공제를 더 받았는지 잘 몰랐다. 그런데 추가로 받은 혜택이 몇 만원에 불과했다는 걸 나중에 알고는 허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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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곧 국회에 제출할 세법개정안이 통과되면 내년엔 올해보다 더 복잡한 연말정산을 해야 한다. 올해 하반기 체크카드 사용액이 지난해의 절반보다 증가하면 공제율을 30%에서 50%로 높여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본지가 국세청이 제공하는 연말정산자동계산기 프로그램을 확인한 결과 지난해 초 실시한 2013년 소득분에 대한 연말정산에서 카드 관련 입력항목은 5개였지만, 올해 초의 ‘2014년 연말정산’에선 9개로 늘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소비를 늘리기 위해 체크카드 추가 사용액에 대한 공제율을 30%에서 40%로 높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올해 상반기 체크카드 추가 사용액엔 40%를 공제하고, 하반기 추가 사용액엔 50%의 공제율을 적용한다. 이 때문에 내년 초의 ‘2015년 연말정산’에선 카드 관련 입력 항목이 12개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고 해도 소득공제 혜택을 더 받을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공제율 상향 혜택을 보려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첫째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등을 사용한 금액이 연소득의 25%를 넘어야 한다. 연소득이 5000만원인 근로자는 일단 1250만원 이상을 써야 한다. 둘째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현금영수증 사용총액이 지난해보다 많아야 한다. 셋째 하반기 체크카드와 현금영수증 사용액이 지난해 1년 사용액의 절반을 넘어야 한다. 이런 관문을 통과해야만 해당 금액에 대해 50%의 공제율을 적용한다.

 게다가 높아진 공제율을 적용 받는다고 해도 공제한도는 300만원(전통시장·대중교통 각각 100만원 별도)으로 제한된다. 예컨대 총급여가 5000만원인 경우 신용카드로만 3250만원을 쓰면 소득공제 한도인 300만원을 채울 수 있다. 연봉의 25%(1250만원)를 넘는 2000만원에 대해 15%의 공제율을 적용 받기 때문이다. 신용카드로 1250만원, 체크카드로 1000만원을 쓰면 가장 효과가 크다. 신용카드로 연봉의 25%라는 기본 금액을 채우고 나머지는 공제율 30%인 체크카드로 한도를 채우는 형태다. 이런 사람은 지금부터 체크카드를 더 써봐야 한도를 다 채웠기 때문에 추가 공제는 받지 못한다.

 체크카드 공제율 상향 효과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는 건 이 때문이다. 최철식 미래에셋증권 WM강남파이낸스센터 부장은 “카드를 많이 쓰는 사람은 이미 공제 한도를 채웠을 가능성이 커 별 혜택이 없고, 여력이 없는 계층은 일부러 카드 사용을 늘리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공제율을 높여주는 것으론 소비 확대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지하경제 양성화 차원에서 카드 소득공제 한도를 늘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역시 아직까지 체크카드 공제율 상향의 효과를 정확하게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 최원석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소비 확대를 위해 내놓은 정책이지만 연말정산만 복잡하게 만들었다”며 “기본적으로 조세 제도는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쉽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무원은 복잡한 입력 필요 없어=일반 근로자가 연말정산을 위해 복잡한 입력을 해야 하지만 공무원은 이런 불편함을 모른다. 2011년 행정자치부는 중앙부처 공무원을 대상으로 ‘종이 없는 연말정산 시스템’을 도입했다. 국세청 연말정산간소화 사이트에서 신용카드, 체크카드 사용 내용 등이 표시된 PDF 파일을 내려 받아 정부의 인사·급여관련 시스템에 올리기만 하면 끝난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일반 기업의 근로자는 간소화 사이트에서 사용 내역 등을 인쇄해야 한다. 이후 별도의 자동계산기 프로그램으로 필요한 항목을 계산하고 정산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한명진 기재부 조세정책관은 “내년 초엔 더 간편하게 연말정산을 할 수 있도록 국세청과 협의를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세청은 연말정산을 어떻게 더 간소화시킬 수 있을 것인지 확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국세청이 발급하는 PDF 파일을 그대로 인식하는 시스템은 일반 기업이 만들어야 하고, 적지 않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세종=김원배 기자, 하남현 기자 oneb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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