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박 대통령, 방미 일정 공식화한 뒤 중국 전승식 참석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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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노동 개혁 추진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왼쪽부터 현정택 정책조정수석, 조신 미래전략수석, 박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다음달 3일로 예정된 중국의 항일·반파시스트전쟁 승전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할지를 놓고 정부가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청와대는 이르면 다음주께 공식 발표를 할 계획이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10일 브리핑에서 “중국 승전행사 참석은 제반 사항을 고려해 신중히 검토 중”이라며 “이르면 다음주 후반께에는 어떤 결정이 났는지 알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승전 열병식을 계기로 방중해 다음달 4일 예정된 상하이 임시정부청사 재개관식에 참석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지만 일정이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민 대변인은 ‘제반 사항 고려’라고 간단히 표현했지만 정부의 고민은 깊다. 중국의 승전행사 참석 여부에 얽힌 국가 간 역학관계가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미국 변수가 가장 크다. 한·미 모두 공식 입장은 “한국 정부가 알아서 결정할 문제”라는 쪽이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이 서로 사이버 공격, 남중국해 문제 등에서 사사건건 대립하는 상황이라 박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한국이 어느 한쪽을 더 중시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때 국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지난 6월 예정된 방미를 한 차례 연기한 터라 걱정은 더 커진 측면이 있다.

 특히 중국의 승전행사가 인민해방군을 사열하는 군사행사란 점도 부담이라는 게 외교부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한국의 답을 기다리는 중국 입장도 느긋하지 못하다. 현재까지 참석을 통보한 국가 정상이 많지 않고, 특히 서방 국가들의 반응은 시원치 않다고 한다. 외교부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선 박 대통령 참석 여부가 승전행사의 흥행을 결정짓게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와 비교되는 점도 정부가 고민하는 부분이다. 지난 5월 러시아의 전승행사 땐 박 대통령이 직접 가지 않고 특사를 대신 보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종전 70주년 담화 발표 뒤 중·일 관계 개선을 위해 9월 3일 전후로 중국을 전격 방문할 수 있다는 소문도 정부가 의식하는 부분이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도 중국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아 들고 아직 확답을 하지 않은 상태다. 말 그대로 국제정치의 복잡한 함수를 푸는 문제다.

 정부 내에선 미국과의 관계만 해결된다면 가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다만 정부 고위 당국자는 “흑백논리식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또 “향후 상황을 보면 방미 일정을 다시 잡아야 하고, 9월 말에는 주요국 정상이 모두 참석할 것으로 보이는 창설 70주년 유엔총회가 있다. 10월 즈음에는 우리가 호스트할 한·중·일 정상회의를 추진하고 있다”며 “중국 승전행사 참석 여부를 기준으로 우리의 하반기 외교 스케줄이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주변국들과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한국의 입장을 적절히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국립외교원 김한권 교수는 “장기적으로 미·중 모두에게 열려 있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중국의 승전행사에 가는 방향으로 검토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하지만 이 경우 연기했던 방미 일정을 공식화할 때까지 발표를 미루는 등 ‘운용의 묘’를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국 행사에 참석하더라도 미뤄졌던 방미 일정을 다시 확정하고 발표하는 수순을 밟은 뒤 공식화하자는 의미다.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선명하게 보여줌으로써 국익 외교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방중의 기회비용을 줄이라는 얘기다.

 아산정책연구원 봉영식 선임연구원은 “하반기 중요한 외교 목표가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인데, 중국 쪽은 아직도 원칙론적 입장 외에 정확한 답을 주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박 대통령이 승전행사에 참석하는 것으로 중국의 3국 정상회의 적극 참여를 보장받고, 미국엔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3국 정상회의가 중요하다’는 식으로 우리 입장을 강조하는 윈-윈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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