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성공보수 反사회적·무효"…대법원 사법 67년만에 폐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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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형사사건의 불구속·보석·무죄 등 결과를 놓고 변호사와 의뢰인이 맺은 성공보수 약정은 무효라고 판결했다고 24일 밝혔다. 대법원이 기존 변호사 수임질서의 뿌리인 형사 성공보수를 폐지한 것은 1948년 정부수립 이후 67년 만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양승태 대법원장, 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전날 성공보수 반환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은 민법 제103조가 정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반사회질서 법률행위)에 해당돼 무효"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이어 "이 사건 선고 이후 맺은 모든 성공보수 약정은 효력이 없다"고 밝혔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형사 성공보수 약정은 원칙적으로 유효하나 액수가 과다한 부분에 한해 효력이 없다'던 기존 판례를 바꾼 것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2009년 10월 아버지가 특가법상 절도혐의로 구속된 아들 허모씨는 조모(53) 변호사와 착수금 1000만원 외에 추가로 아버지가 석방될 경우 성공보수를 지급한다는 내용의 성공보수 약정을 체결했다. 조 변호사가 보석허가신청서를 제출할 무렵인 같은 해 12월11일 허씨는 1억원을 지급했고 허씨의 아버지는 보석이 허가된 뒤 2010년 5월6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 확정됐다. 이후 허씨는 “1억원은 판사 등에 대한 청탁 활동비 명목으로 지급한 돈이며 성공보수라 해도 과다하다”며 반환 청구소송을 냈다. 원심은 “이 중 4000만원은 부당하게 과도해 무효이므로 조 변호사가 허씨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자 조 변호사는 “정당한 성공보수”라며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은 이날 대법관 13인 전원일치의 의견으로 조 변호사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국가형벌권의 공정한 실현을 그 이상으로 하는 형사사법은 법치주의의 근간”이라며 “특정한 수사방향이나 재판의 결과를 ‘성공’이라고 정해 그 대가로 금전을 주고 받기로 하는 변호사와 의뢰인의 합의는 국민들이 보편타당하다고 여기는 선량한 풍속 내지 건전한 사회질서에 위반된다”고 제시했다. 대법원은 또 "결과가 승소와 패소로 갈리고 의뢰인이 승소로 인해 경제적 이익을 얻게 되는 민사사건은 형사사건과 성질이 다르다"며 "계약자유의 원칙에 따라 성공보수약정이 허용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로 그간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에 이르던 형사성공보수 약정을 어떤 명목으로도 체결할 수 없게 됐다. 성공보수는 특히 수임사건 중 형사사건의 비중이 높은 고위 법관 또는 검찰출신 '전관'변호사들의 주된 수입원이었다. 이번 판결로 전관의존도가 높은 법무법인이나 전관출신 개인 변호사들은 직격탄을 맡게 됐다. 변호사업계의 지각변동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다만 계약이 민법 제103조에 위반되는지 여부는 계약 당시 상황을 기초로 판단해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입장이어서 이미 체결된 성공보수 약정의 경우 소급적용하지 않는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법사를 바꾸는 혁명적 판결”이라며 “‘유전무죄무전유죄’나 ‘전관예우’ 논란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형사사법의 신뢰를 높이는 획기적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장혁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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