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리포트] 메르스보다 치명적인 홍콩독감, 백신 개발 늦어 10월에나 접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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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산이 끝을 보이면서 관심은 바다 건너 홍콩으로 쏠리고 있다. 올해에만 벌써 563명의 사망자를 낸 홍콩독감 때문이다. 특히 최근 3주간 입원 환자 89명 중 61명이 사망해 지난 겨울(1~4월) 이후 잦아들었던 독감 공포가 다시 커지고 있다.

WHO도 예측 못한 ‘스위스형’

사망자 규모와 감염력 모두 메르스를 압도한다. 2003년 302명의 사망자를 낸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보다 치명적이란 평가다. 홍콩 시민은 1969년 10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던 홍콩독감 사태를 떠올리고 있다.

홍콩 당국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변이는 없었다. 다만 백신이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매년 2월 그해 유행할 독감 바이러스 3종을 예상한다. 제약사는 이 예측을 바탕으로 백신을 만든다. 올해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A형 가운데 H1N1 ‘캘리포니아형’과 H3N2 ‘텍사스형’, B형 가운데 ‘매사추세츠형’이 유행할 거라고 봤다. 불행하게도 홍콩에서는 텍사스형이 아닌 ‘스위스형’ 독감이 퍼지고 있다.

우리나라 보건당국은 “국내에서 스위스형 독감이 유행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한다. 여름철에 계절성 독감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유로 들고 있다. 과거에도 없었으니 이번에도 없을 거란 얘기다. 그러나 메르스 국내 유입에 안이하게 대처해 사태를 키웠던 당국자의 말을 믿어도 될지는 의문이다. “유행 가능성이 작다”는 말을 듣고 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인명 손실과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 현재 우리나라도 텍사스형 백신을 비축하고 있다. 부랴부랴 스위스형 독감 백신을 생산 중이지만 올 10월은 돼야 접종이 가능하다고 한다. 여기에 백신 접종 후 항체 생성에 2주 이상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어도 앞으로 4개월은 홍콩독감 환자가 국내에 유입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미리 대비해 나쁠 건 없다. 홍콩 당국도 처음엔 “인플루엔자는 매년 찾아오는 것이고, 건강한 일반인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국과 홍콩을 오가는 사람은 1주일에 7만 명에 달한다. 안심하고 있다간 메르스 사태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김진구 기자

◆독감의 유형=독감은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가 원인균이다. A형은 다시 H와 N 유형으로 세분화할 수 있다. H는 적혈구응집소, N은 뉴라민분해효소를 의미한다. 두 단백질이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따라 바이러스 유형이 결정된다. 현재 H는 16개, N은 9개가 발견됐다. 이론적으론 144가지 조합의 유형이 가능하다. 하지만 각각의 조합에 변형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사실상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유형이 발생한다. 텍사스형이나 스위스형 역시 약간씩 변형된 유형이다. 1918년 2000만 명이 숨졌던 스페인 독감과 2009년 유행한 신종플루는 H1N1형, 1957년 200만 명의 사망자를 낸 아시아 독감은 H2N2형, 고병원성 조류독감은 H5N1형이며, 이번 홍콩독감은 H3N2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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