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참담한 심정 … 백신·치료제 개발 적극 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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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3일 오전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확산의 최대 진원지가 된 것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했다. 이 부회장은 “메르스 확산을 막지 못해 국민 여러분께 너무 큰 고통을 끼쳐 드렸다”며 사과하고, “환자분들은 저희가 끝까지 책임지고 치료해 드리겠다. 관계 당국과도 긴밀히 협조해 메르스 사태가 이른 시일 내 완전히 해결되도록 모든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23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 5층 다목적홀, 감색 정장 차림으로 양손의 주먹을 쥔 채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단상에 선 이 부회장은 “제 자신이 참담한 심정입니다. 책임을 통감합니다”며 대국민 사과문을 약 3분간 낭독했다. “의료진에 격려와 성원 부탁드립니다”고 말하는 대목에선 잠시 울먹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발표를 하면서 두 번이나 연단에서 내려와 머리를 숙였다.

이 부회장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과 관련한 삼성서울병원의 미숙한 대응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그가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힌 것은 1991년 삼성전자 입사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공식 기자회견 ‘데뷔’ 무대가 사죄의 자리가 된 셈이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이 부회장의 47번째 생일이기도 했다.

 이 부회장이 전격적으로 사과에 나선 것은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유행의 진앙지로 국민적 비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삼성서울병원 운영 주체인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에 선임된 그는 공식적으로도 병원 운영의 최고 자리를 맡고 있다. 여기에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신뢰도가 타격을 받으면서 삼성그룹 전체의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점을 고려했다는 분석이다.

 

 이번 기자회견은 이 부회장이 자청해 성사됐다.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는 “지난주 예정된 해외출장을 취소하고 병원을 찾아가는 등 본인이 직접 나서겠다는 의사를 계속 밝혀왔다”며 “다만 메르스가 진정될 때까지 사과 시점을 미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 지난 주말 내내 본인이 직접 발표문을 가다듬었다”고 덧붙였다.

 재계에서는 계열사의 과오라도 그룹 오너 일가가 직접 책임을 지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부회장이 “환자분들은 저희가 끝까지 책임지고 치료하겠다” “앞으로도 감염질환을 막기 위해 백신과 치료제 개발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그런 의미에서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도 제주 신라호텔에 메르스 환자가 투숙한 사실이 알려지자 18일부터 호텔에 머물면서 직접 방역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사태 수습 이후 쇄신위원회를 꾸려 전면적인 시스템 개선에 나서기로 했다. 응급실을 진료공간과 분리하는 식으로 시스템을 손보고, 음압병실을 확충하는 등 진료환경을 개선한다. 각종 감염질환에 대한 백신·치료제 개발에도 나선다. 이를 위해 말라리아·에이즈 치료를 지원하고 있는 게이츠 재단처럼 앞선 백신·치료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의료기관을 지원하고 협력을 강화한다. 국내 감염질환 치료 연구도 지원한다. 개발까지 천문학적 돈이 들고 경제성도 떨어지지만 사회에 공헌하는 모습을 보이고, 세계 공공보건에 기여하겠다는 취지다.

 한편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은 “초기 격리나 노출 환자 관리에 미흡했다”며 초기 대응 실패를 인정했다. 그는 “메르스의 완전 종식에는 시간이 걸리겠으나 추가 수퍼전파자가 없다면 메르스는 산발적 발생에 그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라고 덧붙였다.

글=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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