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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단협은 노사 자율인데 … 가이드라인 내겠다는 정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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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정부가 올해 임금·단체협약의 기본 방향을 이달 중에 제시하기로 했다. 사실상 임단협 가이드라인이다. 정부가 개별 사업장의 근로 조건과 관련된 노사 협약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내는 것은 이례적이다. 임금·단체협약 체결은 노사의 자율 사항이어서다. 이를 둘러싼 논란이 일 전망이다.

 고용노동부는 2일 오전 새누리당과의 당정협의에서 이런 내용의 ‘상생 고용을 위한 임단협 등 노사협약 지원’ 대책을 보고했다. 이 자리에서 고용부는 올해 임단협의 기본 방향을 ‘상생 고용 협약’으로 잡았다고 했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이달 중에 구체적 방향을 담은 안을 제시하고, 현장에서 실천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도해 나가기로 했다.

 이 가이드라인에는 노사, 원·하청, 정규·비정규직 간의 상생 방안을 실천할 수 있는 내용을 담는다. 구체적인 예로 고용부는 상위 소득 10%에 해당하는 임직원의 솔선수범을 유도키로 했다. 고소득자의 임금을 동결하고, 여기서 생기는 여윳돈으로 청년을 더 고용하도록 독려하겠다는 얘기다. 또 지역별, 업종별, 주요 사업장별로 노사협력선언과 상생 고용 실천운동을 확산시켜 나가기로 했다. 고용부는 “강원도·전남·부산·전북·경남을 비롯한 22개 지역노사민정협의회에서 이미 공동협력선언을 했고, 지난달 21일 L그롭의 전 계열사가 창조적 노사문화실천선언을 했다”며 “이런 분위기를 이번 임단협 협상 때 담아내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고용부는 불합리한 노사관계와 위법한 관행도 이번 기회에 바로잡겠다고 했다. 회사 측에는 최저임금 위반이나 임금 체불과 같은 기초 고용 질서를 위반하는 행위를 엄단하겠다고 했다. 원·하청 간의 불공정 거래에 대해서도 칼을 뺄 방침이다. 노동계를 대상으로는 불법 파업에 법대로 엄정 대처한다. 또 단체협약상의 고용 세습이나 위법한 인사경영권 침해에 대해서는 바꾸도록 지도해 나갈 계획이다. 그러면서 “임단협 밀착 지도·관리로 노사 갈등을 최소화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개별 사업장의 임금·단체협상에 대해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임단협 가이드라인은 대체로 경영계나 노동계가 자율적으로 제시하고, 개별 사업장에선 이를 기준으로 사업장 실정에 맞게 협상을 진행해 왔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불법·위법한 사안에 대한 지도 감독을 해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전국 노동관서에 내리는 지도 지침으로 보이지만 정부가 임단협과 관련된 기본 방향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개입하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한국노총 강훈중 대변인은 “2015년 임단협의 기본 방향이란 이름에 나타나듯 내부 지도 지침이라기보다 정부가 직접 조정하겠다는 뜻으로 자율교섭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며 “만약 이런 시도가 있으면 투쟁으로 막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당정은 지난 4월 노사정 논의 과정에서 의견 접근을 이룬 통상임금이나 근로 시간 단축과 관련된 내용을 근로기준법에 담아 개정을 추진키로 했다. 또 민간 부문에 임금피크제를 확산시키기 위해 취업 규칙을 좀 더 쉽게 바꿀 수 있도록 지침을 제정하는 데 뜻을 같이했다. 새누리당 권성동 환노위 간사는 “고용부가 대법원 판례를 토대로 근로감독관 업무 준칙(지침)을 만들도록 해 취업 규칙을 변경할 때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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