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정하듯 문구 넣고 빼고 … “뭔 얘긴지” 졸음 속 합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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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국회가 양보 없는 설전을 벌이고 있는 국회법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때까지 그 흔한 공청회 한 번 열리지 않았다. 특히 5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 회기 연장을 결정한 뒤 국회의원들도 졸음 발언들이 오가는 새벽에 통과됐다. 지난달 29일 오전 1시3분에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의 국회운영제도개선 소위원회 속기록이 그 생생한 장면을 담아냈다.

 그날 소위 위원들은 새정치민주연합 측이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한 국회법 개정안을 논의했다. 특히 정부가 만든 시행령에 대해 국회가 어디까지 수정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느냐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김도읍 새누리당 의원=“야당은 시행 중인 시행령까지 포함시키자는 건가.”

 ▶최원식 새정치연합 의원=“그것은 아닌데, 세월호법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이렇게 하면 세월호법 시행령뿐 아니라 모든 시행령에 적용돼 버려서….”

 ▶이춘석 새정치연합 의원=“국회법 개정에 합의한 건 세월호법뿐 아니라 행정입법 자체를 통제하자는 취지였다.”

 조·이 의원은 여야 원내수석부대표로 협상 당사자들이었다. 협상에 참여하지 않은 야당 의원조차 세월호법과 무관한 시행령으로 대상을 확대하는 데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이 의원은 “합의사항”임을 내세워 “모든 시행령을 손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이어갔다. 율사(律士) 출신들의 설전이 이어졌다.

 ▶김 의원=“법령 위반을 따질 해석권은 사법부에 있다. 소급해 적용하는 건 입법부의 월권이다. 입법부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곳이지 통제하는 곳이 아니다.”

▶진선미 새정치연합 의원=“여야 합의가 전제가 됐다. 소급입법이라고 얘기하면 절대 안 된다.”

 이 과정에서 같은 야당 의원끼리 신경전도 벌어졌다. 최 의원이 소급에 반대하는 입장을 말하려고 하자 진 의원이 끼어 들었다. 최 의원은 “왜 내 말을 막아!”라며 발언권을 얻었다.

 ▶최 의원=“김(도읍) 의원도 위헌 관련 주장을 할 수 있다고 본다. 합의가 잘못됐는지 아닌지는 얘기하지 않겠지만 합의했으니 개정안 문구에 그대로 넣자.”

 이후 여야는 ‘지체없이’ ‘소관’ 등 개정안에 들어갈 문구들을 넣을지 뺄지를 놓고 ‘흥정’에 가까운 논의를 이어갔다. 회의가 1시30분을 넘기면서 참석자들이 졸음에 겨운지 “지금 내가 막 정신을 못 차려 가지고…. 뭔 얘기인지 이해가 잘 안 돼서…”와 같은 앞뒤 맥락이 안 맞는 발언들도 등장했다.

 논의가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자 소위 위원장인 조해진 의원은 “소급해야지. 소급하고 있잖아요, 지금도…. 그러면 당연히 소급해야지”라며 소급 적용하자는 야당 주장에 동의했다. 끝까지 소급 적용에 반대한 김도읍 새누리당 의원은 “위원장이 그렇게 말하면 더 할 말이 없다”며 “소수의견을 명시해 달라”며 물러섰다.

 회의는 1시51분에 산회됐다. 여야는 개정안 문구에는 합의했지만 “처리한다는 의미에는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다”(조 의원), “(문구에 대한) 해석 권한은 없다”(이 의원) 등 제각각의 결론을 내린 채 회의를 마무리했다. 소급 적용에 난색을 표한 새누리당 이상일 의원 등은 기권했다. 심도 있는 논의를 못한 채 운영위 소위에서 ‘주먹구구식 결론’만 낸 국회법 개정안은 두 시간 뒤인 3시50분 본회의를 통과했다.
강태화·위문희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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