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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무너진 제방만 고쳤어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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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장마철을 앞두고 공사를 마쳐달라고 신신당부했는데 늑장을 부리더니…."

1일 오전 경남 함안군 법수면 백산리 들녘. 1천2백평 비닐하우스에서 수해를 입은 수박을 치우던 황용돈(46)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달 30일 내린 비에 수박재배용 비닐하우스가 잠겨 며칠 뒤 출하하면 1천여만원을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빗물과 함께 사라졌기 때문이다.

黃씨의 비닐하우스는 지난해 8월 수해 때에도 침수돼 3천여만원의 피해를 보았다. 1억여원의 부채를 안고 있는 黃씨는 지난해 수해 이후 거의 소득이 없어 이번 수박농사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黃씨는 "매달 2백여만원이나 되는 원금과 이자를 갚을 일이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인근에서 6백평의 수박농사를 짓는 조용도(68)씨도 사정은 비슷했다. 조씨의 비닐하우스 세 채도 모두 침수돼 수박들이 누렇게 썩어가고 있었다.

이 일대 6개 마을은 지난해 8월 태풍 '루사'때 백산배수장 앞 제방이 무너져 농경지 5백30㏊가 물에 잠겨 1백22가구 3백23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던 곳이다.

하지만 1일 현재까지 제방 붕괴지점 앞에 가제방을 쌓아놓은 채 복구공사가 진행 중이다. 지난달 30일 비는 1백여㎜에 불과했지만 배수장 배수펌프 네 개 가운데 두 개밖에 가동하지 않아 다시 피해가 생긴 것이다.

백산제방붕괴피해 주민대책위 조정규(58)위원은 "장마철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배수펌프를 정상 가동하지 못하는 등 안이하게 대처한 농업기반공사와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씨는 "백산 들녘 2백㏊의 농경지 중 30%가 침수돼 정상 수확이 불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수해를 보았던 경남 의령군 지정면 마산리 포외마을 이동수(56)씨의 축사도 이번 비에 피해를 봐 4백여마리의 돼지 중 두마리가 죽었다. 근처 나상순(34)씨 축사에도 물이 들어차 사육 중인 1백여마리의 개 가운데 10여마리가 목숨을 잃었다.

경남도는 이번 비로 수박 2백13㏊, 벼 83㏊ 등 8백7㏊의 농경지가 침수됐지만 물이 바로 빠져 큰 피해는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농민들은 한번 침수된 비닐하우스 수박은 모두 썩는 데다 보리.밀 등은 상품성이 떨어져 수확을 해봐야 제값 받기가 어렵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태풍 '루사'때 붕괴돼 재가설 공사가 한창인 경남 함양군 유림면 하촌리 임천교 복구현장에서는 임시 다리 건설용 자재들이 물에 떠내려갔다.

함양군에선 안의면 금천리 경호강 제방 공사장과 휴천면 문정리 다리 공사장에서도 골재 1천t과 임시 차도가 유실됐고 마천.서상.백전면 등의 복구공사 현장 40여곳에 쌓여 있던 골재와 거푸집 등도 물에 떠내려갔다.

경남도는 지난해 수해로 복구공사가 진행 중인 7천9백63곳 가운데 94곳이 올 여름 장마철 이전에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남도 이병호 치수재난관리과장은 "복구가 늦어진 지역은 대부분 지난해 발생한 피해에 대한 보상 협상과 이를 위한 조사 등이 진행 중인 곳"이라며 "수해가 발생하면 우선 복구하고 뒤에 보상을 해주는 등의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함안=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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