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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숙의 ‘新 名品流轉’] 해외 유출 문화재 환수만이 최선일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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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호 29면

1 18세기 경공장이 제작한 ‘교의’. 126(높이)×65(너비)×36.2(길이)㎝, 미국 와이즈만미술관 소장.

광복 70주년이란 역사적 무게 때문인지 이를 명분 삼은 행사가 곳곳에서 열린다. 문화재 분야에서는 해외로 유출된 한국 유물을 되찾아오는 일이 대사(大事)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문화재 환수가 ‘운동’이 되고, 이쪽 일에 나선 몇 몇 인사가 영웅시되는 과정이 이어지자 자칫 국수주의로 흐를 위험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이 최근 발간한 『미국 와이즈만미술관 소장 한국문화재』는 이 사안에 대한 생각거리 하나를 던져준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외국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그 결과를 공유하고 활용하기 위해 설립된 재단으로, 이 책은 여기서 펴낸 ‘국외 한국문화재’ 총서 4번째 보고서다.

미네소타대학교의 와이즈만미술관은 한국 전통가구 컬렉션이 우수하다는 평을 듣고 있는데, 이 컬렉션의 핵심은 정치학자 에드워드 라이트(1931~88)가 기증한 유물이다. 라이트는 1967년 풀브라이트 위원회 단장으로 서울에 와 한국 미술품을 열정적으로 수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 머문 11년 동안 그가 모은 400여 점의 한국 문화재는 북한에서 제작한 가구 등 희귀품이 많다.

라이트는 좋은 작품을 알아보는 안목 덕에 헐값으로 시장에 나온 전통 가구를 다량 사들일 수 있었다. 한국전쟁 종전 10여 년이 흐른 당시 한국인은 가난으로 유물을 수습할 정신이나 여유가 없었다. 더구나 ‘전통’은 밀려드는 ‘현대’ 앞에서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가보로 내려오던 장과 농을 내버리고 내열성 합성수지인 ‘호마이카’ 장을 들여놓았다. 놋그릇과 놋숟가락을 팔아 스테인리스나 플라스틱 주방기구로 바꾸었다. 이 혼란기에 라이트는 자칫 아궁이 땔감으로 사라질 수도 있었던 전통 가구를 구했다.

2 좌판 등받이에 투각된 당초문. [사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번 조사에 참여했던 오다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조사연구실 팀장은 “현재는 거의 진품을 보기 어려운 북한산 가구를 포함해 다양한 가구를 접하니 옛 어르신을 만난 듯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공간에서 쓰던 교의(交椅)는 그 중에서도 백미다. 교의란 신위를 올려놓는 의자로, 신주를 봉안하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하늘로 오를 듯 길쭉한 다리가 머금은 흑칠은 지금도 빛이 나고, 좌판 등받이와 양 팔걸이에 투각한 당초문은 자수를 놓은 듯 섬세하다.

한국인보다 더 애정 어린 관심으로 한국 유물을 보살피며 전시해준 와이즈만미술관 사람들을 떠올리면 ‘환수만이 대수일까’ 자문하게 된다. 국내에서 인정받지 못한 한국 문화재를 제대로 평가해서 가치를 확인해준 전 세계 애호가들도 소중하다. 그들 곁에 있기에 한국 문화재가 더 널리 알려지고 빛날 수 있다는 생각의 전환이 긴요한 때다.

정재숙 중앙일보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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