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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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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비 새는 지붕과 바가지 긁는 아내, 그리고 연기(煙氣).

독일 속담에 나오는 '집안의 3대 악(惡)'이다. 연기가 악에 포함된 것은 난방 시스템과 관련이 있다. 옛날 유럽에선 집 한가운데 불 자리를 마련하고 모닥불 형태로 불을 피워 추위를 이겼다. 문제는 굴뚝 같은 특별한 배연(排煙) 시설이 없어 집에 연기가 가득 찼다는 점이다.

궁리 끝에 벽에 작은 구멍을 내 연기가 빠지게 했다. 독일에선 이를 '빈트아우게(Windauge)'라 불렀다. '바람 구멍'이란 뜻이다. 이 말이 변해 오늘날 영어의 'Window(창문)'가 됐다고 한다. ('문헌과 유적으로 본 구들 이야기 온돌 이야기', 김남응 지음)

이어 벽난로가 등장했다. 그러나 집을 골고루 따뜻하게 해 주지는 못했다. 독일에서 프랑스 왕가로 시집와 공작 부인이 된 리제로테는 1695년 2월 고향에 보낸 편지에서 "왕의 식탁에서도 물과 와인은 얼었다"고 적었다. 또 6년 뒤 겨울엔 "나를 따듯하게 해 주는 것은 침대에서 데리고 자는 강아지 여섯 마리"라는 편지를 띄웠을 정도다. "벽난로는 아무리 커도, 너무 크다고 할 수 없다"는 서양 속담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서양 난방은 이후 철제 난로를 거쳐 오늘날의 라디에이터로 발전했다.

반면 우리 조상은 예부터 세계적 자랑거리인 '구들'을 사용했다. 구들은 바닥 난방시설 그 자체나 그런 난방으로 된 방바닥, 또는 방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이다. 민속학자 손진태(孫晋泰) 선생은 구들을 '구운 돌'에서 생겨난 이름으로 추정했다. '온돌(溫突)'은 한글 창제 전 구들을 기술하기 위해 만든 한자어다.

구들은 기원전 3세기 이전 한반도 북부와 만주를 중심으로 나타났다. 3~4세기엔 한반도 전역으로 전파돼 한민족 고유의 난방 문화로 자리 잡았다. 불을 때는 곳인 '아궁이', 연기가 지나는 통로인 '고래', 연기를 밖으로 배출하는 '굴뚝' 등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구들은 설치 비용도 저렴하고 난방 효과도 뛰어나 2300여 년을 중단 없이 발전해 왔다.

그 구들 난방이 최근 중국에서 새로 짓는 고급 아파트들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전파되고 있다고 한다. 또 일본에서도 신축 아파트에 온돌을 표준 사양으로 채택하는 곳이 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 온다. 새해엔 구들로 대표되는 한류가 또 한번 동북아를 달궜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상철 아시아뉴스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