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진 수요일] 국민연금, 2060년에 내가 너를 만날 수 있긴 하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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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하는 방안을 놓고 정치권이 격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30 세대는 이 싸움에 대체로 무관심하거나 회의적입니다. 소득대체율이 어떻게 조정되든 약속한 액수대로 받기 힘들 거란 의구심이 크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청춘리포트가 20~30대 남녀 108명에게 물었더니 소득대체율을 10%포인트 올리는 방안에 대해 66%가 반대한다고 답했습니다. “보험료만 증가할 뿐 받는 연금은 더 줄어들 것” 등 냉소적인 반응이 많았습니다.

 물론 정부와 정치권이 치열하게 고민한다면 지금보다 더 탄탄한 연금 구조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희망은 멀고 불안은 가깝습니다. 청춘들 사이엔 연금이 고갈되는 2060년(정부 추산) 이후엔 한 푼도 받지 못할 거란 우려까지 나옵니다.

 청춘리포트는 20~30대 대학생·직장인·자영업자 3명을 만나 국민연금의 미래에 대해 인터뷰했습니다. 이들 세 청춘의 예측과 우려를 미래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2030 세대가 은퇴한 노인이 되는 2060년을 기점으로 한 가상의 기사입니다.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이 가상의 기사는 현실이 될지도 모릅니다. 부디 이 우울한 상상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foneo@joongang.co.kr

#시나리오 1 : 민영화로 완전 고갈 피했지만
2075년엔 바닥 … 우리 아들은 어쩌지

이상훈 / 한국외대 글로벌경영학 4학년

왼쪽은 현재 모습, 오른쪽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한 가상 이미지다. [차준홍 기자]

45년 전 박근혜 정부가 국민연금 고갈을 예측했던 2060년 새해를 맞이했다. 새해 아침 뉴스에선 우려했던 국민연금 기금의 완전 고갈은 피했다는 소식이 나온다. 10년 전 험악했던 국민연금 사태를 떠올리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10년 전인 2050년 정부는 국민연금의 부분 민영화라는 극약 처방을 발표했다. 기금 운용 주체를 늘려 연금 수익률을 높이겠다는 계획이었다. 광화문광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다. 국민연금 민영화 찬성과 반대 측이 격렬히 맞섰다. 민영화 반대를 외치는 국민연금관리공단 직원들까지 거리로 나왔다. 광장은 완전히 통제됐다. 약 6개월에 걸쳐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른 끝에 국민연금 기금의 약 10%가 민영화됐다. 하지만 기금이 바닥나는 걸 겨우 몇 년 늦추는 데 그쳤다. 아들 서준이가 은퇴할 15년 뒤엔 기금이 완전히 바닥난다고 한다. 연금관리공단은 막대한 기금 지출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세 번째 구조조정에 나섰다.

 악화된 국민연금의 재정 상태를 되살릴 순 없다는 얘기가 돌았던 게 벌써 30여 년 전이다. 그 즈음 우리 사회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30%를 넘어섰다.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자 일하는 사람은 해마다 줄고 젊은 세대의 부담만 더 커졌다.

 물론 나도 5년 전부터 국민연금을 받아 생활한다. 하지만 겨우 100만원 남짓한 돈이다. 30년 전 ‘현재 가치로 90만원을 주겠다’고 안내를 받았었는데…. 식료품 사고 공과금을 내고 나면 10만원이 채 안 남는다. 나는 그래도 25년 전부터 개인연금을 들어놓은 덕에 생활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 아주 화려한 노년은 아니지만.

 하지만 아들 서준이는 걱정이다. 15년 뒤 국민연금이 완전 바닥나면 서준이는 어떻게 노후를 보내야 할까. 요즘은 내 연금 가운데 일부를 증권에 투자하고 있다. 서준이에게 얼마라도 더 물려주고 싶은 생각에서다. 일흔 살이 되도록 이러고 있는 게 가끔은 서글프기도 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국민연금만 쳐다볼 수 없는 게 이 나라의 복지 형편이니….

#시나리오 2 : 2050년에 이미 완전 고갈
기대도 안 했다 … 따로 노후 대비해 다행

정윤범 / EBS 라디오 PD  

왼쪽은 현재 모습, 오른쪽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한 가상 이미지다. [차준홍 기자]

직장에서 첫 월급 명세서를 받았을 때가 생각난다. 40년도 넘은 일이다. 월급에서 그렇게 많은 항목을 떼 간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소득세와 주민세, 건강보험 등 기타 잡다한 항목이 줄잡아 10여 개는 돼 보였다. 월급의 약 5분의 1이 그런 식으로 통장을 스치지도 못한 채 사라졌다. 그중에는 국민연금도 있었는데 15만원 남짓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철없던 시절 나는 그 돈을 그냥 ‘세금’이라고만 생각했다.

 국민연금은 10년 전인 2050년 이미 완전히 고갈됐다. 실업률이 급증하며 납입자 수는 줄어든 반면 초고령화 사회는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던 게 결정적이었다. 고갈이 예견된 2040년부터 “세금으로 부족분을 메워야 한다”는 주장과 “세금으로 부족분을 메우면 국가 부도 사태가 우려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그사이 기금은 빈 우물로 전락했다. 결국 2050년 은퇴를 맞은 사람들은 텅 빈 곳간을 보고 분노했다. 나도 20대 중반부터 30년 넘게 국민연금에 제법 많은 돈을 냈으니 명백한 피해자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담담했다. 단 한 번도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국민연금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종의 세금 정도로 생각했다. 아니면 부모 세대를 부양하는 데 내야 하는 돈이라 여겼다. 우리보다 훨씬 인구가 많은 1950~60년대 출생자들에게 연금을 주면 돈이 남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빈 곳간을 보고도 초연할 수 있었던 건 그래서다.

 젊었을 때 냉철하게 판단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노후를 자력으로 대비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썼다. 주택연금을 받기 위해 가치가 떨어지지 않을 만한 집을 골라 크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구입했다. 30년 넘게 꾸준히 개인연금을 부었고, 노후를 대비해 수십 년 동안 해외 증시에도 조금씩 투자를 해왔다. 넉넉하진 않지만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을 정도는 된 데 만족한다.

 “국민연금을 한 푼도 받기 힘들 것”이라는 내 예측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하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오늘은 국민연금만 바라보다 힘든 노년을 보내고 있는 친구들에게 술이라도 한잔 사야겠다.

#시나리오 3 : 보험료율 대폭 올려 고갈 막았는데
이젠 소득 30%를 보험료로 내야 된다네

김시화 / 의류사업

왼쪽은 현재 모습, 오른쪽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한 가상 이미지다. [차준홍 기자]

인터넷이 또 국민연금 얘기로 시끄럽다. 2000년대부터 5년마다 한 번씩 반복되는 흔한 풍경이다. 60여 년 동안 내가 기억하는 것만 10번이 넘는다. 결국 “보험료 납입 금액을 올리지 않으면 국민연금이 파산한다. 반대로 연금 수급액은 줄여야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차원이 다르다. 소득 대비 15%인 납입금액을 30%로 두 배 올리자는 얘기라서다. 충격의 강도가 사뭇 다르다. 정부에서는 “완전 고갈을 막으려면 이 방법뿐”이라며 임전무퇴의 자세다.

 49년 전 옷가게를 처음 시작했을 때가 생각난다. 당시 스물여섯 살이던 나는 2011년부터 서울 한남동에서 직원 4명을 데리고 온·오프라인을 오가며 열심히 장사를 했다. 일에 점점 재미를 붙여 가던 2014년부터 직원 4명을 고용하고 법인을 설립했다. 대표였던 나와 직원을 포함해 구성원이 5명 이상인 법인이 되면서 관련법에 따라 국민연금에도 의무가입했다. 월 임금 140만원을 기준으로 9%인 12만6000원. 근로자가 절반인 6만3000원을, 법인이 나머지 절반을 부담했다. 말이 법인 돈이지 사실상 내 돈이 나가는 것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에 상당한 부담이 됐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에는 40%로 예정된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릴 것이냐 말 것이냐로 한참을 싸웠던 기억이 난다. 몇 년 뒤 소득대체율은 50%로 올라갔지만 보험료율도 점차적으로 인상돼 15%까지 치솟았다. 이때부터 국민연금에 회의적이었다. 국민연금 개혁이 자꾸만 가계 부담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연금 정책은 늘 표심에 따라 오락가락했다.

 이번에는 연금 고갈 시점을 2100년 이후로 늘리기 위해 보험료율 30%까지 올리겠다고 한다. 자영업자의 소득은 변화무쌍한 탓에 내가 사업을 시작할 때는 9%도 큰 부담이었다. 보험료율이 30%인 시대에 사업에 첫발을 딛는 젊은 세대의 부담은 얼마나 클까. 보험료율을 대폭 인상하면 100년 이상 가는 국민연금이 될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이다. 45년 전 내가 국민연금에 처음 가입했던 때부터 연금 정책은 계속해서 후퇴해온 것만 같다.

글=한영익·박병현 기자 hanyi@joongang.co.kr
사진=차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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