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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 "우리 애 좀 끼워 줘" 맞벌이 엄마 서러운 '줄 잡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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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왕따 탈출 나의 노하우
(인터넷 중앙일보 열린마당 여론 조사 : 맞벌이 엄마 1046명 답변)

(1) 맞벌이임을 밝히지 않고 가급적 모임에 참석. (502명·48%)
(2) 시간 대신 돈으로 봉사. (294명·28%)
(3) 아이 친구들과 영화구경 등 다른 식으로 만회. (141명·14%)
(4) 반장 엄마와 무조건 친하게 지냄. (109명·10%)

유통업체에 다니는 최모(34)씨.

유치원 다니는 딸을 둔 최씨는 '엄마 노릇 티 낸다'는 말이 듣기 싫어 조퇴는커녕 어쩌다 한번 집에 전화할 때도 다른 사람 없는 데서 눈치보며 건다. 그렇다 보니 유치원 공식 행사에도 거의 참석하지 못한다.
친구들은 "무슨 배짱이냐"며 겁을 주지만, 개별적인 생일잔치는 물론 유치원 내에서 생일선물 교환도 금한다는 유치원 가정통신문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기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딸과 생일이 같은 달인 다른 아이 엄마들로부터 생일파티 초대장을 받고는 그야말로 머릿속이 하얘졌다.
유치원 밖에서 생일파티가 열리고 있는지도 몰랐던 최씨는 지금껏 '왕따'였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친구 생일파티 한번 못 가본 딸이 너무 불쌍해 며칠 밤잠을 설쳤음은 물론이다.
"초등학교 들어가면 더하다"는 친구들 말에 10년 가까이 다닌 직장을 관둘 생각까지 진지하게 하고 있다.

직장 다니는 엄마 왕따 탈출 전략

직장 다니는 엄마가 '왕따'라는 건 이미 오래된 얘기다. 맞벌이 엄마들은 시기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한번씩 이런 충격적인 순간을 겪는다. 그래도 교육보다 보육이 급선무인 때는 좀 낫다. 아이가 커갈수록 엄마의 스트레스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몇 년 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대치동 엄마들의 입시전략'이란 책에서는 '사교육 1번지' 서울 대치동 엄마들의 보이지 않는 원칙이 '맞벌이 엄마와 함께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며 간접적으로 맞벌이 엄마 왕따 놓기를 권유할 정도니 말이다.

그렇다면 결국 최씨처럼 직장과 아이교육,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직장 다니며 '왕따'에서 탈출한 엄마들의 왕따 탈출 노하우를 살짝 엿들었다. 모든 육아와 교육 문제가 그렇듯 이 문제도 정답은 없다. 그러나 엄마들은 "관심과 시간 투자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무리 전업주부라도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 취업주부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 자신의 자랑거리를 떠벌려라

초등학생 아들을 둔 신모(36)씨는 "엄마 치맛바람에 휩쓸려 다닐 시간에 공부든 뭐든 애한테 직접적으로 투자하라"고 말한다. 아들을 영어 유치원에 보냈던 신씨는 "유치원 행사에서 만나면 눈도 안 맞추던 엄마들이 '애가 영어 잘한다'는 소문을 듣고는 같은 과외그룹에 넣으려고 알아서 전화하더라"며 너무 조급해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아이가 이렇게 스스로 잘하기를 기대하는 것보다 엄마가 확실한 장기를 보여주는 게 '왕따' 탈출에는 훨씬 더 도움이 된다.

기악과 교수인 김모(37)씨. 교수라고만 말했던 지난해와 피아노 전공이라는 걸 공공연하게 말했던 올해에는 엄마들의 시선이 달라졌음을 실감하고 있다. 악기교육에 관심 있는 엄마들이 많다 보니 일반적인 정보는 물론 좋은 선생님을 소개받으려고 다른 엄마들이 먼저 전화를 걸어온다. 이때 자연스럽게 정보를 듣게 되니 정보력 부재에서 오는 불안감은 많이 해소된 편이다.

#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라

맞벌이 엄마가 '왕따'가 되는 건 역설적으로 일을 해서가 아니라 일을 안 해서이다. 전업주부 입장에서는 교환할 정보가 없는 것도 용서가 어려운데, 카풀 같은 기본적인 필요사항도 충족시켜주지 못하니 불만이 커지는 것이다. 여기에 "맞벌이 엄마들은 차려놓은 밥상 먹기만 한다"는 막연한 피해의식도 한몫한다. 이런 편견을 없애려면 돈이든 시간이든 형편 닿는 대로 무조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이비인후과 개업의인 이모(34)씨는 쉬는 주말이 더 바쁘다. 같이 영어과외 하는 일곱 살 큰딸 친구들 데리고 영화구경이며 놀이공원에 다니기 때문이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이렇게 하자면 돈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이렇게 공을 들이며 노력봉사한 덕분에 무슨 일이 있으면 엄마들이 잊지 않고 불러주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 티 나지 않게 아이를 키워라

취업주부 입장에서야 화는 나지만 전업주부 엄마들 생각도 일리는 있다. 엄마가 집에 없으면 아무래도 티가 난다는 믿음 말이다. 그래서 사소해 보여도 숙제나 준비물은 꼭 챙겨서 보내야 한다. 회사원 정모(43)씨는 "아무리 늦게 들어가도 준비물이 있다는 걸 알면 24시간 할인점에 가서라도 꼭 준비물을 챙겨 보낸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최소한 '엄마 뒷바라지 못 받아 아이가 흐트러졌다'며 '그 집 아이와 놀지 말라'는 말 들을 일은 없다. 그러나 제일 좋은 건 역시 생활 습관을 제대로 잡아주는 것이다. 숙제든 준비물이든 혼자서 할 수 있게 미리미리 돕는 것이다.

또 학기 초반 최소한 한 명의 엄마는 잡아야 한다. 아이는 알 수 없지만 꼭 챙겨야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학기 초반에 반 대표 엄마에게 "필요한 게 있으면 어떤 형식으로라도 협조하겠다"고 전하고 가끔 전화로라도 안부를 물어야 한다.

# 최후의 수단 '왕따'를 즐겨라

'모르는 게 약'이라는 생각으로 통 큰 엄마가 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부터 다섯 살 먹은 딸까지 셋을 키운 대학강사 조모(36)씨는 이제서야 "둘 다 완벽하게 하려고 하면 도둑놈 심보"라고 깨닫게 됐다. "직업 없는 엄마들은 아이들로부터 인생을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강한데 맞벌이 엄마가 그것마저 위협하면 양자 간의 관계가 좋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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