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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대동공업 그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대동공업은 기아산업과 함께 우리나라 기계공업의「뿌리」로 꼽힐 수 있는 기업그룹이다.
지난 47년 고 김삼만회장이 기업을 일으킨 이래 근 40년간을 한결같이 농기계 일색의 「외길 기공」만을 일구어온 대동공업은 어느 기업그룹 못지 않은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국내 재계의「유행」을 타지 않은, 그리 흔치않은 기업그룹이다.
해방후 적산 인수의 연줄을 타지 않고 창업주 형제 일가의 기술과 자본만으로 출발한 창업과정부터가 그렇고 당시 인기 있었던 소비재 산업에 손을 대지 않고 탈곡기·쟁기 등의 농기계생산에 매달린 것도 그렇다.
또한 40년 가깝게 기업경영을 해오면서도 업종의 수평적 확장에는 눈한번 돌리지 않은채 대동공업·대동중공업·대동기아·한국체인 등 농기계 생산과 관련된 수직적인 발전을 꾀해왔다.
굳이 농기계 이외의 생산품을 든다면 최근에야 손을 대기 시작한 선박엔진과 일부 방산제품 뿐이다.
생산제품중 가장 비중이 큰 경운기를「철우」로 즐겨부르는 대동공업그룹의 경영 스타일은 따라서 창업주 고 김삼만회장의 좌우명이었던 「기공일생」과 이를 이어받은 김상수 현 회장의 좌우명인 「기공이대」에서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다분히 보수적이기도 한 이같은「외길기공」의 결과 40년 가까운 역사를 가졌으면서도 대동은 지난해 계열사 총매출이 약2천5백억원 규모로 그리 크게 성장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한햇동안 우리나라가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농기계의 약60%를 우리기술로 생산해내고 있는 대동은 그만큼 값진「외길기공」의 업적을 쌓아온 셈이다.
대동은 지난75년 창업주 김삼만회장이 별세한 후 77님부터 김회장의 외아들이었던 김상수씨가 대동공업사장에 취임, 한때 몹시 사정이 어려웠던 각계열사를 다시 본궤도에 올려놓는데 성공했다.
2세 승계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기를 잘 극복함으로써「기공이대」의 기틀을 다져놓은 것이다.
김상수 사장은 올초 주총에서 회장에 추대되면서 그간 언론인 출신으로 오랜기간 대동공업에 몸담아온 정태훈씨를 주력기업(계열사 전매출의 약 50%를 차지)인 대동공업 사장에 취임토록 해 오너 가족이 아닌 전문경영인 시대를 열어놓았다.
그렇다고 고 김회장 밑에서 철저한 경영수련을 받으며 자라 비할데 없이 꼼꼼했던 선친의 경영스타일을 그대로 이어받은 김상수회장이 일선경영에서 손을 뗀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간 대동의 대외적인「얼굴」역할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김회장이 이제는 그룹의 대외적인 일에도 마음놓고 나서기 위한 경영포석이라고 할 수 있다.
정태훈사장은 언론인생활을 하다 농기구공업협동조합 전무로 일하던중 당시 조합이사장이었던 고 김삼만회장의 눈에 들어 대동에 스카웃된 경영인이다.
이같은 경영포석과 함께 그간 대동의 대외적인「얼굴」로서 특히 어려웠던 시절 큰 힘이 되어주었던 장덕희 전 대동공업 회장은 올초 대동공업 고문으로 추대됐다.
장고문은 농수산부 차관·농협중앙회장 등을 지낸 후 대동에 영입돼 대동경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됐다.
장고문과 정태훈사장 등의 경우를 제외하면 나머지 대동기아 김종렬사장·한국체인 박헌두사장·대동중공업 공륜각부사장 등 주요 포스트의 대동경영진들은 모두 대동의 토박이 경영인들이다.
한편 유행과는 거리가 먼 대동이 한국재계의 유행(?)을 따른 것이라면 단 한가지, 대동도 삼성·럭키금성·효성 등 우리 재계의 유수한 기업들처럼 진주출신의 기업인이 일으킨 기업이라는 점이다.
지금도 진주에 본사가 있고 또 진주사람들을 많이 채용하고 있는 대동은 최근 농기계수출을 위해 대구에 대규모 공장을 완공했고 선박엔진 생산을 위해 스웨덴의 볼보사와 기술제휴를 하는 등「기공삼대」를 위한 기틀을 다지고 있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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