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농·수협 선거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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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는 4월에 실시되는 농협단위조합장·축협조합장·수협 시군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벌써 일부지역에서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하거나 상대방 입후보자를 헐뜯고 무고하는 등 「타락」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사례들을 보면 입후보자가 투표권자에게 술자리를 베풀었다든가 음식을 대접하고 선물을 주거나 현금을 돌린 사례도 있다. 또는 경합되는 입후보자들끼리 비위를 들춰내 당국에 진정하는 등 자기득표에 유리하도록 유형무형의 불미한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는 경우들이 관계당국에 적발돼 수사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사례를 얼핏 보면 사소한 것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권력과 금력에 의해 부정·불법·타락선거가 공공연히 조직적으로 행해지던 지난 수십년의 역사를 살아온 국민들로서는 이 정도의 타락이 「약과」인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비록 사소한 타락일지라도 이러한 일이 다시 일어나는 것은 지난날의 악몽으로 되돌아가는 느낌조차 없지 않다.
광복이후 우리 현대사가 혼란과 질곡 속에서 허덕여온 중요한 이유가운데 하나가 공정한 선거를 한번도 치르지 못했다는데도 있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대부분의 선거가 금력과 권력·지연·혈연에 의해 강요되고 비뚤어진 결과였다. 그러나 압력과 타락의 유혹에서 과감히 헤어나지 못하고 이를 받아들이고 이에 가담한 국민들에게 더욱 큰 원인과 책임이 있었다. 국민의 유일한 참정권의 행사가 그토록 왜곡될 수 있었다는 것은 결국 국민의 민주역량이 부족했다는 뜻도 된다. 자업자득의 결과로 그런 역사 속에서 살아온 것은 결코 남을 원망할 일도 아니다.
아무리 지엽적이고 사소한 선거라도 그것이 민의를 대표할 대표자를 뽑는 선거라면 공정과 공명을 기해야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더우기 우리는 올해 안에 실시될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있다. 이번 조합장 선거에서 부정과 타락선거의 악령이 되살아난다면 이러한 분위기는 총선거마저도 위협할 가능성이 많다.
공명선거외 분위기가 정착되도록 부정과 타락의 요인을 제거하는데 당국은 과감해야 할 것이다.
입후보자들의 입장에서는 당선돼야겠다는 목표에만 집착한 나머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지만 유권자인 대의원들은 냉정을 잃지 말아야 한다. 맡은바 소임을 공정하게 다할 수 있는 인물을 선별할 냉철한 판단력이 사소한 향응이나 금품에 의해 흔들려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은 곧 유권자로서의 역량이요 양식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민주국가의 기본은 공정한 선거로부터 출발한다. 공명한 선거분위기와 공정한 투표권의 행사역량을 뿌리내리기 위해 당국은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이를 해치는 요소를 과감히 제거해 엄단해야 할 것이며 투표권의 행사자는 지역사회의 발전과 공명선거의 토착화를 위해 압력과 유혹을 뿌리치고 민주역량을 발휘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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