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공무원연금, 돈 낼 사람은 따로 있건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회사 형편도 안 좋은데 깐풍기, 양장피는 빼자.” “양장피는 있어야지, 어떻게 느끼하게 탕수육만 먹나.” “그래도 해산물 요리는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겠어? 팔보채 작은 걸로 하나 하자.” 큰 양보라도 하는 듯 평소 메뉴에서 한두 가지 빼더니 중국식당 룸 안에서의 간부 회식이 시작됐다. 식사가 끝난 뒤 계산서는 바깥쪽 테이블에서 짜장면·짬뽕과 서비스 군만두로 배를 채운 대리급 이하 사원들 앞에 놓였다. 말단 직원 복리후생비에서 간부들 회식비 대는 게 이 회사의 오랜 관행. 이쑤시개 찾던 이 부장, 밉살맞게 한마디 던진다. “어이, 자네들도 조금 있으면 안으로 들어오게 돼. 세월 금방이야.”

 요즘 이런 회사가 있다면 온갖 비난에 시달릴 것이다. 그런데 이와 흡사한 일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국민대타협기구’는 20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여야 국회의원 2명씩 4명, 소관부처 공무원 4명, 공무원단체 대표 4명, 관련 분야 교수 및 시민단체 소속 8명이다. 대부분이 40대 후반이나 50대 중반이다. 시민단체 측 위원들과 두 초선 의원을 제외하면 모두 머지않아 공무원연금, 국회의원연금, 사학연금 중 하나의 수령자가 된다.

 공무원연금 개혁의 핵심적 이유 또는 최대 명분은 ‘후손에게 과도한 부담을 안기지 않기 위해서’다. 공무원연금 제도가 지금의 형태로 지속된다면 세금 또는 국채로 메워야 하는 보전금이 2030년에는 연간 15조원, 2040년에는 연간 20조원 이상 된다. 15·25년 뒤에 현재 40·50대의 노후를 위해 지금의 청년들이 짊어져야 하는 몫이다.

 연금 개혁 움직임을 보면 여야 어느 쪽 안을 택하든 현재의 청년들 신세를 질 수밖에 없다. 정도 차만 약간 있을 뿐이다. 그런데 정작 ‘계산서’를 받아 들고 지갑을 열어야 할 그들은 이 논의에 끼지도 못했다. 대학 총학생회도 있고, ‘청년유니온’이라는 세대별 노조도 있건만 그들에게는 위원 할당은 고사하고 의견 개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고도 ‘국민대타협’이라 부른다.

 15·25년 뒤 그들이 “우리는 동의한 적이 없다”며 지불을 거부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재정난을 이유로 일괄 삭감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나. 그들은 억울해하는 연금 세대에게 이렇게 싸늘하게 말할지도 모른다. “당신들, 특히 공무원 출신들, 우리가 청년실업으로 고통받던 그 시절에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