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있는이야기마을] 썩은 고구마 쟁탈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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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먹다 보니 남은 고구마가 두 개뿐이었다. 나는 '하나를 빨리 먹으면 사촌이 손대기 전에 나머지 하나도 내가 먹을 수 있겠다'는 잔머리를 굴렸다. 사촌도 나름대로 계산하며 열심히 먹고 있는 표정이 역력했다.

결국 마지막 군고구마 쟁탈전이 벌어졌다. 나는 "내가 먼저 찜해 뒀다"고 우겼고 사촌은 "내가 먼저 손댔다"고 주장했다. 친척들의 중재로 우리의 '내가 다 먹기' 계획은 무산되고 반씩 나눠 먹기로 타협이 이뤄졌다.

그런데 반을 나누는 순간, 아뿔싸~. 뽀얀 김 속에 노랗게 빛나야 할 고구마 속이 푸르딩딩 썩어 있는 게 아닌가. 어른들은 "이걸 갖고 싸웠어?" 라며 웃으셨고 나와 사촌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마냥 아쉬운 입맛만 다셨다. 그럴 줄 알았으면 폼나게 양보나 할 걸.

썩은 고구마를 차지하려고 다투던 철부지들은 이제 성년이 됐다. 사촌은 나라를 지키느라 최전방 철원에서 입김을 불고 있고 나는 대학생이 되어 준사회인으로 살고 있다. 입김이 제법 하얗게 나오기 시작하면서 거리 곳곳에서 동그란 군고구마통들이 보인다. 이번 겨울에는 동갑내기 사촌에게 군고구마라도 사들고 찾아가야겠다.

최희란(21.학생.경기도 부천시 괴안동)

*** 12월 9일자 소재는 '첫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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