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두렵고 우울하다면? 회한 없이 살도록 노력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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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다람살라에선 그를 ‘닥터 배리’로 부른다. 미국인 배리 커즌(68)은 티베트 불교 승려다. 26년간 티베트 불교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라마의 주치의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처음엔 다람살라에 6개월만 있을 생각인데 어느새 26년이 돼버렸다”며 “스승인 달라이라마를 모시는 게 너무 기뻐, 가끔 내 살을 꼬집는다”고 웃었다.

 커즌 스님이 지난달 한림대 생사학연구소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다. 지난달 28일 서울 불광동 약수정사에서 ‘죽음과 죽음의 과정’이란 주제로 법문을 했다. 그의 도반인 용수 스님은 “원래 조용히 공부만 하던 분인데, 달라이라마의 말씀에 따라 대중을 상대로 활발히 활동한다”고 설명했다. 1년에 절반 이상을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설법한다고 한다.

배리 커즌 스님이 지난달 28일 서울 약수정사에서 ‘죽음과 죽음의 과정’이란 주제로 법문을 하고 있다. 화두는 ‘죽읍시다(Let’s Die)’였다. [사진 법보신문]

 - 의사가 된 이유는.

 “11살 때 뇌종양이 발견됐다. 한때 혼수상태 까지 이르렀다. 뇌수술만 4번을 받았다(그의 머리엔 플라스틱 두개골을 이식한 자국이 남았다). 나를 살린 의사 선생님은 영웅이었다. 그처럼 되고 싶어 의대에 들어갔다.”

 그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UC 버클리)에서 철학을 전공한 뒤 남가주대학(USC)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현재 중국 홍콩대학 의대 방문교수로 있다.

 - 왜 불교에 귀의했나.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11살 이후 내 청소년기는 남들과 좀 달랐다. 고등학교 때 명상을 시작했다. 1986년 워싱턴대학 의대 조교수로 재직하면서 라마(티베트 불교 스님)를 만났다.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을 때 머리가 360도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 3년간의 안거(安居)를 거쳤다.

 “3년 안거에서 스님처럼 살았다. 89년 스승인 달라이라마로부터 계를 받았다.”

 - 달라이라마가 수행을 어떻게 도와줬나.

 “달라이라마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다. 그러나 그 어떤 인간과도 다르다. 몸과 마음 전체가 사랑과 자비심이다. 내가 불교의 지혜인 공성(空性)을 조금이라도 깨친 건 달라이라마 덕분이다.”

 - 당신은 젊었을 때 ‘나는 누구인가’와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가’라는 질문 때문에 괴로워했다고 했다. 답을 찾았나.

 “아직도 정답을 찾진 못했지만 더 이상 괴로워하진 않는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은 서서히 발견하고 있는 중이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가’에 대한 답은 확실하다.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serve) 존재한다. 동시에 다른 사람을 더 잘 위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수련하려고(improve) 존재한다.”

 커즌 스님은 ‘죽음 전문가’다. 그는 지난달 법문에서 불교 전승에 따르면 사람은 죽음의 8단계를 거치면서 의식이 육신을 벗어나고 때론 윤회한다고 설명했다.

 - 어떻게 편안하게 죽을 수 있나.

 “우리는 결국 죽는다는 걸 알지만 그 사실을 자주 잊어버린다.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망 당일까지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우울하고 불안하고 두려워진다. 하지만 평화롭게 죽을 수 있다. 자비심을 키우고 늘 우리가 죽는다는 걸 염두에 둬라. 인생에서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들을 이뤄라. 그러면 죽을 때 회한이 덜 남고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된다.”

 - 불교와 의학의 지식이 충돌하지 않나.

 “젊었을 땐 둘이 자주 충돌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그 차이가 점점 줄어들고, 이제는 거의 없다. 현대 의학이 모든 걸 설명해줄 순 없지 않은가.”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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