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국·독일 관계 해빙 무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앙겔라 메르겔 독일총리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뒤틀렸던 미.독 관계가 풀릴 조짐이다. 앙겔라 메르켈 신임 독일 총리는 취임 엿새 만에 대미 관계 개선에 시동을 걸었다. 지난달 28일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외무 장관을 미국으로 보낸 것이다. 메르켈 총리 자신이 내년 1월 미국 방문에 나선다.

◆ 환대받은 독일 외무장관=슈타인마이어 장관은 지난달 29일 국무부의 콘돌리자 라이스 장관과 로버트 졸릭 부장관, 백악관의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을 잇따라 만났다.

슈타인마이어는 독일 새 정부의 외교노선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이젠 그만 화해하자는 뜻도 전달했다. 그의 미국 방문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가 슈뢰더 총리 시절 총리실 장관으로 프랑스와 손잡고 반미 외교를 이끌었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이런 그가 '잘해 보자'며 악수를 건넸다.

회담 분위기는 밝았다. 라이스 장관으로부터 다음주 베를린을 답방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만큼 미국이 새 독일 정부에 거는 기대는 크다. 마침 슈뢰더 정권에 비판적이던 미국 내 보수파들도 최근 우호적으로 돌아섰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워싱턴 포스트 기고문에서 메르켈과 대연정에 대한 신뢰를 표시하려 애썼다.

워싱턴에서는 슈타인마이어 장관이 양국 관계를 푸는 데 적임이라는 의견까지 나온다. 그가 비밀정보기관(BND)의 감독권을 행사한 총리실 장관을 지냈기에 미국의 대테러정책과 그 애로사항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미 중앙정보국(CIA)이 독일 등 유럽에서 테러용의자들을 불법으로 이송했다는 문제가 터지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미국을 비난했지만 독일은 달랐다.

그는 "이번 사안에 대한 평가는 언론보도가 아니라 사실에 근거를 둬야 한다"며 미국 편에 서는 모습을 보였다.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슈타인마이어 장관은 실용주의자"라며 "조용하게 문제를 처리하는 스타일이라 앞으로 독일의 외교정책이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메르켈의 대미 외교 구상=메르켈 총리는 취임 후 "이라크 정책 등 슈뢰더 정권 시절의 기본적인 외교방향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민당과 대연정을 하고 있는 입장이라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외교 정책을 둘러싼 대연정 내 이견은 여전하다. 다만 덮어두었을 뿐이다. 일단 급격한 변화는 피한다는 복안이다.

'프랑스.러시아=마이너스, 미국.영국=플러스'. 이것이 메르켈이 짜고 있는 새 외교 노선이라고 주간지 벨트암 존탁이 26일 보도했다. 지난 7년간 대외정책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러시아.프랑스와는 다소 거리를 두는 대신 서먹서먹했던 미국.영국은 끌어안겠다는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달 22일 취임 후 브뤼셀을 방문한 자리에서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통해 유럽 국가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눌 것을 바란다"면서 미국에 넌지시 화해 의사를 보냈다. 메르켈의 친미 성향은 이미 야당 당수 시절에도 드러났다.

2003년 초 그는 "유럽에서 미국의 뜻에 거슬리는 어떤 정책도 펼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헬무트 콜 전 총리 시절 끈끈했던 미.독 관계를 되살려야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