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의 굳힘이 숨은 패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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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제37기 왕위전 본선리그 제8국
[총보 (1~200)]
白·安祚永 7단| 黑·趙漢乘 6단

안조영7단은 '넘치지 않는 물'과 같다. 그의 재주는 안으로 잘 갈무리돼 섣불리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앞서가기보다 조용히 기다리는 편이다. 초조해하지 않고 마치 때는 오게 돼 있다는 듯 묵묵히 참아나간다.

이런 安7단의 편한 자세가 조한승6단에게 심리적인 압박으로 작용했을까. 바둑판이란 전쟁터에서 유연하고 두터운 행마와 탁월한 감각을 선보여온 趙6단이 이날은 어쩌다가 밸런스를 잃고 지나친 실리전법으로 돌아섰다.

바로 그 순간 安7단은 유유히 허점을 찌르며 대세를 주도하기 시작했고 이 같은 도도한 물결은 판이 끝날 때까지 쉼이 없었다. 安7단의 명국이고 완승의 한판이라 할 수 있다.

초반의 흑35가 바로 실리에 치우친 한 수였고 이 판의 패착이라고까지 단정할 수 있는 한 수였다. 흑35에서 백40까지의 6수를 옮겨놓은 것이 '참고도'다.

趙6단이 흑1로 실리를 차지하자 安7단은 2로 비스듬히 중앙을 제압했는데 이 수가 실은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호착이었다.

좌상이 커지면서 흑은 5의 뛰어들기를 감행해야 했고 이로써 바둑은 엷어졌다. 상변의 실리도 결국 지켜내지 못했다.

조훈현9단은 35에 대한 정답을 묻자 "한칸 뛰는 거지(A의 곳). 물어볼 것도 없잖아"했다.

安7단은 이후 53의 실수를 잘 응징해 승세를 굳혔고 후반은 부자 몸조심으로 일관했다. 그는 확실히 '고수'였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물은 조용히 흐르지만 넘치지 않는 물은 없다.

때때로 사납게 둑을 무너뜨리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安7단이 마지막 한겹의 허물을 벗고 바둑계의 정상에 서려면 이 점을 한번 새겨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70.75=64, 73=67, 200수 이하 생략, 백5집반승.

박치문 전문기자

◇바둑강좌.대국 생중계는 조인스 바둑 (http://life.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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