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프란체스카 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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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통령은 경북 도청을 순시하고 청년단들을 방문하여 격려해주었다.
국방부장관은 깨끗이 청소해 놓은 집으로 우리를 안내했는데 이 아담한 집을 임시숙소로 정했다고 말해 주었다.

<전화 씻은 듯한 대구>
북괴의 6·25남침으로 갑작스런 피난생활을 하게됐던 지난여름 우리가 대구에 있는 경북지사 관저에서 기거할 때는 우리 방 주위에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붐볐던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때는 지사관저에서 우리가 조그마한 곁방이 달린 방 하나를 쓰고 있었는데 과분하게 느꼈었다.
그 당시 서울에서 갑자기 내려오게 된 정부관료들과 여류명사들까지 지사관저로 모두 찾아 들어와 하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기 때문에 그때는 방문만 열면 사람에 치여 넘어질 뻔했었다. 무덥고 긴 날씨에 견디다 못해 국방장관이 이 사람들 중 일부라도 옮겨줄 장소를 여기저기 구해보았는데 마침내 대구시장관사 옆의 두 영국장교가 쓰고있던 집에 양해를 얻어 혼자 내려온 각료들을 좀 보내고 또 다른 집을 물색해서 더 많은 사람을 보낸 후에 지사가족과 우리는 겨우 숨을 쉴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구의 피난숙소가 이렇게 편안하고 조용할 수 있다니 오히려 이상한 느낌이 든다.
설움 많은 피난살이로 수많은 주부들이 말할 수 없는 불편과 고통을 받고있는 지금 이토록 넓고 편리한 부엌을 나 혼자 독차지하고 쓴다는 것이 왠지 마음에 부담스럽고 퍽 염치없이 느껴진다.
나는 잠시나마 대통령이 여기서 휴식을 취하기를 바랐지만 대통령은 대구근방의 농촌을 돌아보고 싶어해 합천 쪽으로 갔었다.
대구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 수행원이 사과를 사러 어느 가게에 들렀는데 우리가 대통령일행이라는 것을 알게된 가게주인이 사과 값을 사양하고 달려나와 대통령을 환영하면서 저녁을 초대했다.
나는 우리숙소로 빨리 돌아오고 싶었으나 대통령의 뜻에 따라 그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방안은 어두운 편이었는데 방 한쪽에 놓인 벼루와 붓을 발견한 대통령은『입춘대길 국태민안』이라고 붓글씨로 종이에 써서 가게주인에게 선사했다.

<동네부인들이 장만>
여러 명의 부인들이 부엌에서 음식을 장만하는 소리는 들려왔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밥상은 들어오지 않고 날은 점점 어두워져 저녁초대에 응한 것을 마음속으로 후회하고 있을 때 겨우 우리는 밥상을 받게되었다. 정성이 깃든 성찬이었다. 대부분의 반찬들이 무척 맵고 짠 편이였는데 대통령은 커다란 밥그릇에 수북이 담긴 밥을 남김없이 맛있게들고 밤늦게 숙소로 돌아왔다.
2월1일 목요일.
대통령은 상오9시에 청주를 향해 출발했다.
대통령이 비행장에 도착했을 때「리지웨이」장군과「알몬드」장군이 대통령을 환영해주었다.
대통령은 한국군의 의장대와 미국군의 의장대를 사열했다.
대통령은「리지웨이」장군에게 자기는「알몬드」장군의 공헌에 사의를 표하고 훈장을 수여하러 왔다고 말했다.
장군은 즉시 의장대와 함께 야전장에 훈장수여식을 위한 준비를 갖추어주었다. 대통령이 「알몬드」장군의 가슴에 훈장을 달아주었을 때「알몬드」장군의 볼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대통령도 무척 감동되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도 그의 공적을 인정하면서 모두 함께 같은 기분으로 눈물을 흘렸다.
후퇴하라는 명령을 받고 철수했던 군대는 누구나 사기가 저하되어 있게 마련이다.
「알몬드」장군의 부관들은 대통령이 수여한 훈장이 자기의 모든 군단의 사기를 북돋워 줄 것이라고 대통령에게 말했다.
「리지웨이」장군과「알몬드」장군은 예하에 있는 각 사단장들과 함께 우리 한국군의 백선엽 1사단장, 유재흥 3군단장, 3군단소속 사단의 민 장군과 장도영 6사단장과 함께 작전회의를 하였다.
백선엽 장군과 장도영 장군은 임진강전투에서 가장 많은 적의 공격을 받아 곤욕을 치렀던 장군들이다.

<알몬드 장군에 훈장>
그러나 이제 이 두 장군들이 그 당시 어려운 여건에서 얼마나 잘 싸웠던가를 인정받게 되었다.
「리지웨이」장군은 대통령에게 신 국방장관이 제의하여 미군장성들과 한국군장성들이 합석해 함께 작전을 세우자고 했던 작전회의에 참석해줄 것을 요청했다.
맨 처음「리지웨이」장군과「알몬드」장군은 한국군이 자기들에게 협력하여 도움을 준데 대해 감사한다는 사의를 표했다.
그리고 나서「리지웨이」장군은 대통령에게 자기들은 적진으로부터 보다 많은 정보를 얻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기들은 속속들이 알아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들은 많은 낙하산부대원들을 보냈지만 대부분 돌아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장군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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