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윈장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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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버마사람들은 그를「느 윈 장군」이라고 부른다. 티베트-버마어로『태양처럼 빛난다』는 뜻이다.「네·윈」은 영자표기 그대로의 발음이다.
그 이름엔 유래가 있다. 1941년 10월, 영국 식민통치에 항거할 버마독립군(BlA)이 결성될 때의 일이다. 독립운동의 주축이였던「30인 동지회」의 지도자「아웅·산」이 그에게 「느·윈」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의 사명감을 일깨워주는 이름이었다.
「네·윈」의 원래 이름은「슈·마웅」이다. 「비장의 보물」이라는 뜻. 지방 하급관리였던 그의 아버지가 이 장남에게 거는 기대를 짐작할수 있다.
청년시절「슈·마웅」의 소망은 천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느 랭군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특히 스포츠에 뛰어나 축구, 하키, 테니스는 선수급이었다. 그러나 생물시험에 낙제, 의사의 꿈은 깨지고 말았다.
그무렵「슈·마웅」은 마르크시즘에 관한 독서에 열중했었다. 관심도 독립운동에 기울어 벌써「우리 버마인협회」 에 가입, 행동가에 앞장 섰다. 「아웅·산」이며「우·누」가 참가한, 일명「타킨당」이라 불리는 조직체였다. 타킨은『주인』이라는 뜻. 그 명칭만 보아도 이들 멤버의 의식을 알수 있다.
타킨당원중 30인의 행동가는 1941년 버마를 탈출, 일본에 잠입한다. 중야육군사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일본군의 버마공략에 뒤쫓아 랭군에 다시 진입.
그때 버마독립군 총사령관은「아웅·산」, 바로 그 휘하의 참모장이「네·윈」이었다.
「네·윈」의 우상은「버마형 사회상주의」(Burmese Way to Socialism)의 건설이다. 그가 1962년 3월1일 쿠데타로 집권하고 나서 외국 자본을 몰아내고 비동맹중립을 표방한 것도 바로「버마형」노선의 일면이다.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버마형」이념은 20여년동안 버마를 세계로부터 잊혀진 나라로 만들었다.
그러나 국경을 2천km나 맞대고 있는 중공과는 우호지향적이었다. 「네·윈」은 집권 20년동안 중공을 무려 11번이나 방문했다. 지난 77년엔 북경을 다녀, 평양까지 갔었다.
그런 버마에 버마공산당(BCP)게릴라가 출몰, 매년 1백여명의 정부군이 목숨을 잃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야말로「네·윈」의 딜레머다.
오늘의 버마는「네·윈」이 의장으로 군림하고 있는 버마사회주의계창당의 일당체제. 대통령은 따로있지만「네·윈」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있다.
『「네·윈」의 인품, 그러니까 융통성 있고 헌신적이며 근엄한 그의 성품은 그의 인생과 일과 나라를 향한 냉철함(언이모션)으로 유감없이 나타난다.
언젠가 영국 가디언지의「T·D·아먼」은 이런 인물평을 쓴일이 있었다.
이제 아웅산참사의 뒤처리를 보며 오늘의 버마를 이끌고 있는「네·윈」의 인품과 저력을 다시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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