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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부인하는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거짓을 가지고 진실을 덮으려고 하다 보면 거짓이 또 거짓을 낳는 일이 한없이 되풀이 될뿐이다. 대한항공여객기를 격추한데 대한 소련의태도가 바로 그런것이다.
소련은 들끓는 세계여론으로 궁지에 몰리면서도 명백한 흑을 백이라고 우긴다.
사건발생 8일만에 소련군참모총장「오가르코프」라는 사람이 기자회견을 갖고 대한항공여객기가 소련전투기에 의해 격추된 사실을 인정하고 나섰다. 미국과 일본이 전세계에 공개한 요지부동한 물증과 사고해역근처에서 마침내 떠오르기 시작한 기체의 잔해와 희생자들의 것으로 보이는 시체일부는 소련으로 하여금 대한항공여객기 격추를 시인하지 않을수 없는 궁지로 몰아붙인 것이다.
그러나 「그로미코」외상, 「오가르코프」참모총장, 그리고 「우스티노프」 국방상을 비롯한 소련의 책임자들은 한결같이 피격된 여객기가 특수한 첩보임무를 띠고 소련영공을 침범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대한항공 여객기를 미국의 RC135정찰기로 오인했다고 횡설수설하기도 한다. 그런 어불성설의 생떼를 근거로해서 소련은 스스로 저지른 죄과를 인정하지도않고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을 거부할 뜻을 분명히 하고있다.
이미 이자리에서 지적한바 있지만 이지구상에 네살짜리 어린이부터 7순노인까지의 남녀노소 2백69명을 태우고 적지에 투입하는 나라는 당과 국가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인명을 파리목숨처럼 취급하는 소련말고 또 어디 있단 말인가.
KAL이라는 표지도 선명한 여객기를 미군의 첩보기로 혼동했다는 주장도 일본방위청이 포학한 소련전투기 조종사와 지상관제소의 교신기록 앞에서는 날조된 것이라는 움직일수 없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소련조종사는 대한항공여객기에 미사일이라는 마탄을 발사하기전에 『카-다』 라고 여러번 되풀이했다. 「카-다」는 소련말로 KAL을 지칭하는 것이라 한다.
소련은 제아무리 거짓말의 천재를 총동원해도 세계여론을 기만할수가 없고, 여객기격추의 모든책임을 인정하고 보상과 사과, 그리고 사고재발의 방지를 약속하지 않고는 민간인 대략학살의 오명이 후세에까지 길이 전수될것이다.
소련당국자들은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사고후 지금까지 건져올린 희생자들의 시신과 기체의 잔해를 우리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뿐아니라 사고해역에서 멀리 떨어져 비명에간 부모와 아들· 딸· 아내·남편·형제들의 이름만 애타게 부르다가 돌아선 유족들에게 현장에서 진혼의 재를 갖출 기회를 허용하고 한국·미국·일본을 포함한 피해당사국들과의 합동수색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와 양심의 요청인것이다.
소련처럼 철저한 중앙통제아래 있는 나라에서 이런 사건이 우발적으로 일어났다는 주장을 믿을 사람은 없다. 소련당국이 여객기 격추의 책임자들을 처단하고 유족들의 서릿발같은 한을 풀어주는 성의를 보일 것을 거부하고 첩보활동이니 뭐니하면서 사고책임을 미국과 사고기에 미루려는 비열한 행위를 계속하면 세계여론과 양심의 소리는 소련에 대한 보복조치를 한층 강화하고 확대하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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