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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접근 왜 막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검푸른 물결이 일렁이는 일본북해도 최북단 왓까나이항 앞바다, 소련의 학살행위로 비명에 숨진 KAL007기탑승객 유가족들의 울부짖음이 하늘에 사무치는 곳이다. 그들은 더나아갈수 없는 한계선에 막혀 사고현장까지를 가지못한채 혹시나 해류에 밀려올지도 모를 가족의 시신, 이나 유류품, 심지어 입고 있던 옷자락 한점이라도 건져볼까해서 근처를 서성이면서 주체할수 없는 분함과 슬픔에 오열하고 있다.
북위45도57분05초, 동경1백41도22분06초, 왓까나이항 북쪽65km해역. 4일상오 이곳에 도착한 일본인과 재일동포 유족47명과 5일상오에 역시 이곳까지 달려간 한국진혼단53명도 이지점에서 배를 멈추고 멀리 북쪽사쟁고해역을 향해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몸부림쳤다. 이지점에서 북쪽으로 70∼80km거리에 있는 바다에 KAL기가 격추된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소련측은 자기들 영해안으로 한발짝이라도 들여놓는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비무장 민간여객기에 미사일세례를 서슴지않았던 소련측이 다시 무슨 만행을 감행할지 몰라 일본측도 더이상의 접근을 엄격히 막고 있다.
수색에 나서고 있는 일본해상자위대도 사고해역에 가까이 가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소련은 그들이 저지른 KAL여객기 격추사건의 진상을 감추고 그들에게 유리하도록 사실을 숨기기위해 합동수색은 물론 유족들의 접근 조차도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세계여론의 비난과 매도를 피해보려는 안간힘을 쓰는 그들의 행위는 KAL여객기를 미사일로 격추시킨 만행에 이은 또 하나의 중대한 비인도적 행위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더우기나 유족들이 피살된 가족들의 영혼을 위로하고자 현장에 가는 것마저 거부하는 것은 이해할수 없는 처사다. 공산주의자들의 잔인성을 다시한번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유족들을 태우고 현장으로 가려는 선박들은 무장도 하지않고 정보탐색 장비도 전혀 없는 어선이거나 관광선에 불과하다. 그들의 군사적인 기밀등과는 하등의 관련도 생각할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격추사고가 발생한지 5일이나 지난 지금 그들에게 유리하도록 조작내지 위장작업은 이미 충분히 끝났을 시점이 아닌가.
소련은 마지막으로 한가닥 인도주의의 그림자라도 남아 있다면 피맺힌 울분과 비탄을 안고 현장을 찾아가는 유족들에게 길을 비켜주어야 할것이다.
가족들이 비명에간 해역을 멀리 두고 안절부절 서성대는 유족들의 몸부림치는 통곡이 들리지 않는가. 멀리서나마 바닷물에 꽃을 던지는 유족들의 애끊는 마음, 차가운 북쪽바람에 혼백이나마 추워할까봐 두꺼운 스웨터를 물에 던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닷물을 그릇에 담아 떠올려 가슴에 보듬어안고 비통해하는 유족들의 울음소리가 그들에게는 들리지도 않는단 말인가.
소련은 이번 사건의 진상을 숨김없이 소상히 밝히고 사죄하는 동시에 피해를 보상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에 앞서 유족들이 사고해역에 들어가서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의식이라도 베풀게 허용해야 마땅하다. 이것은 유족들의 가슴에 맺힌 울분과 비통함을 삭일 한가닥 출구를 마련하는 일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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