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의 저력' 유럽 땅에 스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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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기회가 된 2005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23일 막을 내렸다. 한국은 주빈국으로 참여했다. 박람회를 찾은 한 관객이 대형 백과사전 모형 사이로 걸어가고 있다.[프랑크푸르트 로이터=연합뉴스]

'대화와 스밈'. 2005 프랑크푸르트 도서전(19~23일)의 주빈국인 한국이 내세운 주제였다. 우리 책과 문화를 유럽인의 마음 속으로 스며들게 하기 위해 펼쳤던 불꽃놀이는 이제 끝났다.

"산업국가로만 알고 있던 한국을 문화의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계기였다.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 보다 오래된 금속활자본이 바로 한국의 '직지'임을 이번에 알게 됐다. 앞으로 한국학을 공부하려는 사람도 늘어날 테고, 경제 교류 분야에도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프랑크루트 도서전 독일 조직위원회 위르겐 보스 위원장)

세계 최대의 도서박람회에서 한국은 올해의 주빈국 행사를 통해 우리 문화의 저력을 알리는 데 일단 성공했다.

주빈국관은 '한국의 책 100-유비쿼터스 북'을 중심으로 한국 출판 문화의 전반을 집약적으로 소개했다. 메인 이벤트였던 '유비쿼터스 북'(U-북)은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한국이 정보기술(IT) 강국임을 뽐내면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독서를 할 수 있는 미래 출판의 한 단면을 선보였다.

한국의 책과 문화가 서구 언어로 많이 번역.소개되지 않은 게 가장 큰 약점이었다. 한국 책과 문화의 특징이 알려져 있지 않은 상황이어서 책의 내용으로 정면 승부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회했다. 'U-북'이 그 역할을 도맡았다.

주빈국관과 별도의 일반 전시장에 마련된 한국관도 예년에 비해 확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보다 5배 늘어난 공간에 74개 국내 출판사가 부스를 마련했다. 전시의 양상도 '선택과 집중'이었다. 이것저것 다 보여주려고 욕심을 앞세우지 않았다. 출판사마다 대표작가나 대표상품을 대형 사진과 함께 크게 내세워 집중 소개하는 방식을 취했다. 한국에선 내로라하는 출판사라도 해외에 나오면 알아주는 이들이 적은 냉정한 현실을 반영한 전략이다.

한국은 '수입 출판국'에서 '출판 수출국'으로 전환해 가고, 가야하는 과도기에 있다. 여태까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한국의 출판인들이 외국 책을 수입하는 창구로 활용됐던 것이 사실이다. 출판 규모 세계 7위 국가란 명성과 달리 우리 것을 팔기보다는 해외 판권을 사 오기에 바빴다. 올해라고 해서 수출 성적표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주빈국 조직위원회(위원장 김우창)의 목표는 '한국 알리기'였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준비 과정에 뒷말도 많았다. 무엇보다 도서박람회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문화 일반을 소개하는데 치중해 정작 책은 뒷전으로 밀렸다는 지적이 나왔다. 다양한 출판의 영역 중 문학 분야만 특별대우했다는 소리도 나온다. 주빈국 조직위원장과 사무처장이 잇따라 바뀌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이런 시행착오들은 앞으로 출판.문화 관련 국제 이벤트를 치를 때 반드시 참고해야 할 것이다.

프랑크푸르트=배영대 기자

*** 주빈국 조직위원회 김우창 위원장

"우리 출판의 다양성 못 보여줘 아쉬움"

"100%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주빈국 행사를 준비하며 한국 출판계를 비롯한 문화계 전반의 더 많은 의견이 반영되도록 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군요."

2005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조직위원회 김우창(사진) 위원장. 평소 말수가 적기로 유명하다. 주빈국 행사의 폐막을 앞두고 그를 만났다. 화려한 이벤트의 불꽃이 스러지는 시점에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한국 문화의 미래를 위해 그는 벌써 '내부 고발자'의 냉정함을 되찾고 있었다.

"한국 문화에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독일인들이 한국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게 된 것은 큰 소득이지요. 하지만 그들이 우리를 주빈국으로 선정한 것은 독일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음을 잊어선 안됩니다. 한국인들은 너무 쉽게 열광하는 태도를 반성해야 합니다."

우선 그 자신부터 반성했다. 문화를 지나치게 이벤트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 한계를 알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독일,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은 책의 판권을 실제 사고 파는 거래가 주요 관심사였습니다. 그런데 우린 아직 국가 홍보가 필요한 단계였습니다."

주빈국 행사에서 문학에 지나친 무게가 실렸던 점도 인정했다. 한국 출판의 다양성을 더 보여줬어야 했다는 것이다. "국내 문학 작품의 해외 번역을 정부 지원 일변도로 진행시키는 것도 문제"라고 짚었다. 한국의 좋은 문학작품을 다른 나라 출판인들이 '제발 번역하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수준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비상근 조직위원장이었던 그는 "밑에서 다 잘했지만, 좀 더 신경을 쓰지 못한 점이 아쉽다"며 "상근이 아니면 위원장직을 거절했어야 한다는 후회가 남는다"고 말했다.

프랑크푸르트=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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