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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려야할 사할린의 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소련당국이 사할린에 억류하고 있는 한국인에게 일본일시방문을 허용, 헤어진 가족들을 만나게 해줄수도 있다는 뜻을 비쳤다는 한 일본의원의 전언은 이산가족찾기운동을 벌이고 있는 우리국민에게 가슴설레게 하는 낭보가 아닐수 없다.
외무부당국도 이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고 이것이 소련당국의 공식적인 입장이라면 『사할린교포 귀환문제에 돌파구가 열리는 셈』이라고 희망적인 견해를 보였다.
사할린억류 한국인문제는 일제말기인 37년 일본이 전쟁을 일으켜 국가총동원체제에 들어가면서부터 패망직전까지 7년동안 한국으로부터 약4만3천명을 강제로 끌어가 이곳 탄광과 건설공사장에 노동력으로 투입한데서 비롯됐다. 종전이 되면서 일본은 자국민은 모두 귀환시키면서도 한국인은 교섭대상에서 제외시킴으로써 소련당국에 의해 계속 억류돼왔다. 81년 일본변호사협회 조사에 따르면 사할린억류 동포들은 소련의 압력과 북괴의 공작으로 70%가 북괴적을, 25%가 소련국적을 취득했다. 그러나 나머지 5%인 3천여명은여러가지 제약과 압력을 감수하면서도 무국적을 고수, 귀국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사할린교포는 2세, 3세등을 합쳐 7만여명이나 된다.
사할린동포들은 끊임없이 일본과 소련당국에 대해 귀환시켜줄 것을 촉구해왔고 법정투쟁까지 벌여왔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체결로 일본당국은 옛 식민지 지배권을 포기했고 당시의 한국인은 일본국적을 상실, 지금은 외국인이므로 참견할 바가 아니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소련측은 이들의 귀국희망에 대해 일본정부가 일본이주를 원하는 자에게는 이를 허가하고 귀국희망자에게는 일본을 경유하여 귀국시킨다는 조건으로 출국을 허가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일본측은 이들 전원을 한국에 송환하며 송환비용도 한국이 부담해야한다는 주장을 되풀이, 한국측에 모든 책임을 미뤄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해방된지 38년의 기나긴 세월이 흐르도록 한걸음의 진척도 없이 망향의 한을 풀지 못하고 있는 사할린억류 동포의 처지이다.
소련당국이 일본의원에게 말한 내용을 보면 사할린 억류 동포의 영구적인 귀환이 아니고 일시적인 일본방문의 허용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그것도 여비·체재비의 부담과 신분보장을 할수있는 수용시설등을 전제로 하고있다. 어느정도의 실현가능성이 있는지, 또는 일본정부가 이에대해 어느정도의 성의를 보일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다만 우리가 바라는것은 일본정부가 이일을 성취시키는데 전력을 다해달라는 것이다.
현재 진행중인 이산가족찾기운동에서 재회한 가족들의 기쁨과 감동을 보아온 우리로서는 헤어진 가족·친적들의 슬픔과 그리움이 얼마나 뼈저린 것인가를 새삼 통감하고 있다. 사할린동포에 대한 모든 책임은 그들을 강제로 끌고간 일본에 전적으로 있음을 다시 한번 지적해둔다. 일본의 전후문제 처리에서 유일하게 미해결로 남아있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정부도 가능한 모든 외교수단을 총동원하여 소련당국의 진의를 알아보고 일본정부에 대해서는 강력한 교섭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사할린동포의 미송환에는 우리정부의 미온적인 자세에도 그 책임의 일단이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온갖 차별대우와 압력을 이겨내면서도 무국적을 고수하며 귀국의 날만을 기다리는 이들이 이미 7O세이상의 고령으로 더러는 망향의 한을 품은채 고인이 되기도했고 늙고 병들어 폐인에 가까운 사람들도 많으리라 짐작된다. 너무 때늦기 전에 그들의 한은 풀려야만 한다.
소련정부도 체제나 이념의 문제, 국교의 유무라는 형식논리를 떠나 혈육상봉이라는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이문제를 다루는데 인색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번 소련정부의 긍정적 반응이 38년동안 미뤄온 사할린 억류동포 송환문제를 해결하는 돌파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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