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또 편법 검사 파견 … 정신 못 차린 청와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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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가기관의 인사는 감동적이어야 한다. 법과 원칙에 근거하고 대의명분도 갖춰야 한다. 인사를 놓고 뒷말이 나오면 실패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엊그제 있었던 청와대 민정수석실 비서관에 대한 인사는 국민을 당혹하게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직기강 비서관에 유일준 수원지검 평택지청장을 임명한 것이다. 유 청장은 임명 전 사표를 내 현직 신분은 아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이번 인사는 실정법의 허점을 이용한 편법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내세웠던 공약과도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현행 검찰청법(44조)은 검사가 대통령 비서실에 파견되거나 대통령 비서실의 직위를 겸임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1996년 개정돼 97년부터 시행된 이 조항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시비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졌다. 박 대통령도 대선 때 “정치권의 외압을 막기 위해 검사의 외부기관 파견을 못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2013년에는 국무회의에서 ‘법무부 및 외부기관 파견 검사의 감축’을 국정과제로 확정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 때 22명의 검사가 사직서를 내고 청와대에서 파견 근무한 뒤 모두 검찰로 복귀한 것에 대한 비난여론을 의식한 조치였다. 그러나 ‘검사 사표→청와대 파견→신규 임용 형식의 검찰 복귀’라는 편법은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고 있다. 현 정부 들어서만 11명의 검사가 사직서를 내고 청와대에서 근무한 것으로 집계됐다.

 공직 사회의 기강을 담당하는 비서관조차 꼼수 논란에 휘말리게 해놓고 어떻게 ‘관피아 적폐(積弊) 척결’을 운운한단 말인가. 지난해 ‘정윤회 문건’ 유출로 정쟁(政爭)의 중심점에 섰던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쇄신은커녕 편법 인사 시비에 오르는 것이야말로 기요틴(단두대)에 올라야 할 구습이자 폐단이다. 문건 유출 파문을 막기 위해 경찰관들에게 회유를 지시한 의혹을 받았던 우병우 당시 민정비서관이 민정수석으로 승진 발령된 것에도 여론의 비판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불거진 인사 논란은 과연 이 정부가 검찰의 독립성을 지켜줄 생각이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검찰에서 존경받는 인물 중 한 사람인 이명재 전 검찰총장을 민정특보로 임명한 뒤 이뤄진 인사치고는 실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