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애플사가 한국에 투자를 포기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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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내에 만연한 반(反)기업 정서와 도를 넘어선 기업 때리기 행태가 급기야 대규모 외자유치 기회를 물거품으로 만드는 사태를 빚었다. 세계 최대의 MP3메이커인 애플컴퓨터가 최근 삼성전자와 추진키로 했던 4조원 규모의 낸드플래시메모리 합작생산 계획을 철회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문제는 애플이 합작계획에서 발을 뺀 주된 이유가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반삼성 기류와 삼성 때리기 때문이었다는 점이다. 합작파트너의 최고경영자가 국회의 국정감사장에 불려나가 호된 곤욕을 치르고,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연일 합작 상대기업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고 투자할 마음이 싹 가셨다는 것이다.

애플은 자타가 공인하는 MP3업계의 선두주자이고 삼성전자는 여기에 들어가는 낸드플래시메모리의 세계 최대공급자다. 자연히 두 회사의 합작사업은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찰떡궁합의 협력사업이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전략적 제휴다. 이 합작공장이 국내에 건설될 경우 최소 2조원 이상의 투자유치 효과에다 숫자로 따지기 어려운 고용유발 및 부가가치 창출효과가 기대됐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이제 허공으로 사라졌다. 애플은 이제 미국 내에 낸드플래시메모리 공장을 지을 다른 합작사를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국내에서 벌어진 무분별한 삼성 때리기는 대규모 외자유치의 무산과 함께 젊은이들에게 돌아갈 뻔한 수많은 일자리와 지역주민 및 부품 협력업체가 거둘 수 있었던 막대한 소득 기회마저 날리고 만 것이다. 이번 사태는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면서 벌이는 기업 때리기가 해당 기업과 국민경제에 어떻게 피해를 주고 손실을 끼치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지금 세계적인 기업들 간에는 치열한 경쟁과 다양한 제휴협력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이 판에서 한 기업이 놓친 기회는 곧바로 그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애매한 국민정서와 정답이 없는 지배구조를 이유로 기업을 깎아내리는 데 골몰하고, 손 안에 굴러온 기회마저 내차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