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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구 교수, 문자도 1000점 모아 책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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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경기도 지역의 문자도는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인 수도 한성을 포함하고 있어 ‘효제문자도’의 정형을 보여준다.

옛 집 다락 문짝이나 사랑방에는 문자도(文字圖)가 많이 붙어있었다. 말 그대로 그림처럼 그려진 글자, 글자로 읽히는 그림이다. 효할 효(孝), 충성 충(忠) 같이 본받을 만한 덕목을 담은 문자에 그림을 입혀 보고 즐겼다. 문자도는 만물의 꼴을 따 만든 글자인 한자를 쓰는 한자문화권에 널리 퍼져 한국.중국.일본.베트남 등에서 많이 발견된다.

이명구(47.동아방송대학 미디어디자인계열) 교수는 문자도의 아름다움에 홀려 10여 년 세월을 문자도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데 보냈다. 그는 한국 회화사의 주류에 포함되지 못하고 조선 민화의 한 부류로 소홀히 취급된 문자도의 소중한 가치를 되살리기로 작정했다. 그가 엮은 '동양문자도(Typography of the East, MUNJADO)'(리디아 펴냄)는 한자문화권의 문자도 1000여 점을 한자리에 모아 정리한 것으로 이 분야의 노작으로 평가받는다.

한자문화권의 잣대로 보면 오늘날 서구에서 타이포그래피라 부르는 분야가 바로 문자도였다는 것이 이교수의 주장이다. 형식인 글꼴과 내용인 상징물을 연결해 하나의 완결된 예술품으로 만든 조화가 뛰어나다는 평가다. 최근 한국을 찾은 일본의 그래픽 디자이너 스기우라 고헤이(杉浦康平)도 조선 문자도에서 큰 영향을 받았음을 책에 쓰고 있다. 타이포그래피를 배우겠다고 서구로 유학간 한국 디자이너는 제 집에 보물을 두고 이웃 집을 기웃거린 꼴이라고 이교수는 말한다.

특히 조선에서 독특하게 그린 문자그림 가운데 유교의 8가지 덕목을 담은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여덟 글자는 주목할 만하다. 이 덕목은 부모에 대한 효성, 형제간의 우애, 나라에 충성, 사람 사이의 믿음, 올바른 예의, 옳은 것을 좇는 변치 않는 의리, 자신의 분수를 아는 청렴함과 절제,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배우고 따르도록 내세운 것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지나간 뒤 땅에 떨어진 백성의 마음을 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 조선 조정이 내세운 홍보용 포스터였다는 비유도 나온다.

이교수는 이'효제문자도'가 예술품으로 정통 회화에 뒤지지 않는 완성도를 지니고 오늘날의 그래픽 디자인 영역에 상당하는 가치를 지닌다고 본다. 그는 또 '효제문자도'가 중국이나 일본 문자도와 비교해서 생태적인 디자인이 강하고 문자의 자획을 조합하는 면에서 해체적 디자인이 독창성 있게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지역에 따라 표현 양식이 다른 점을 짚어낸 대목은 큰 수확으로 꼽힌다. 그 지역에 고유한 신앙이나 윤리, 소망과 기원 등을 솔직하게 드러낸 문자도가 경기도, 강원도, 경상도, 남도 지역 등으로 나눠 뚜렷하게 발견된다.

이교수는 "조선 시대 민중의 예술 수준을 알려주는 '효제문자도'는 귀한 문화재"라며 "그 가치를 오늘 다시 평가하고 정체성 있는 한국의 문화 콘텐트로 되살려가자는 뜻에서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

이 책(www.leedia.com)은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여하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 출품된다.

정재숙 기자

*** 바로잡습니다

10월 17일자 25면 '한 몸 이룬 글자와 그림' 기사에서 '문자도(文子圖)'표기는 문자도(文字圖)가 맞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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