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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정 찾게한 단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얼마전 모 잡지에 기대를 걸고 응모했던 작품이 낙선된후 나는 자꾸만 신경질적으로 변해 가고있었다.
학교시절 문예에 어느정도 자신을 가졌던 기억들이 되살아 날 때마다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은 충동마저 느꼈다.
더욱 애써 모내기를 끝낸 논의 벼는 가뭄으로 메말라 가고 있어 신경질을 더욱 북돋워 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귓가에 어렴풋이 들려오는 낙수물 소리에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아! 비, 비가 온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내리는 단비를 보고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새벽이 깔려 있는 밖으로 나오니 밤사이 내린비는 뽀얀 먼지를 둘러쓰고 있던 뜨락의 나뭇잎과 장독대를 말끔히 씻어 놓았다.
한낮이 되어서야 비는 그쳤다. 나는 두아이와 함께 들판으로 나가보았다.
어제만 해도 사경을 헤매던 나락 포기는 어느새 생기를 되찾고, 부지런한 농부는 벌써부터 논에 나와 삽질을 하고 있었다. 자연의 법칙을 저버리고선 참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현실을 또한번 확인하며 나는 하늘을 향해 무한한 감사를 드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언덕에 올라서니 산기슭의 개울물은 앞다투어 내려가고 빗물에 세수한 신록은 금가루를 뿌린 듯 햇볕에 반짝였다. 저만큼 달아난 두 아이는 목청을 돋워 메아리를 눌러 대고 있었다. 자연의 신비는 내 마음을 풍요롭게 하면서 무언가 다시 시작하고픈 새로움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나는 무엇인가.
허황된 꿈을 버리고 보다 충실한 삶을 추구해보자. 불쾌했던 것, 그리고 좌절되었던 마음에서 빠져 나오니 일상은 저 눈부신 햇살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자연은 이토록 우리에게 신선한 기분과 새로운 삶의 의욕을 심어주는 신비함을 지니고 있다. 조형둘<경남 진주시 상대동 282의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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