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 방송 간접광고 파문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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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근 세계 주요 언론들은 간접광고의 문제점과 논란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대체로 "간접광고는 프로그램의 질을 떨어뜨려 국민의 시청권을 침해한다"는 쪽에 의견이 모아진다.

◆ "간접광고 바이러스가 퍼진다"=유럽의 많은 국가는 간접광고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 시청자를 속이는 '은폐광고'라 부르며 엄격히 단속한다. 유럽연합(EU) 차원에서 "프로그램과 광고는 구분돼야 한다"는 가이드 라인도 제공한다.

세계적 권위지인 스위스 노이에 취리히 차이퉁은 지난달 30일 "유럽에서 간접광고라는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다"며 "이는 시청자들의 신뢰성을 근본적으로 갉아먹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스위스에선 얼마 전 SF RDS 방송사가 '꿈의 직업'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간접광고를 해 물의를 빚었다. 각종 스포츠 프로그램도 상황이 비슷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최근 독일에선 공영방송인 ARD와 ZDF 방송사 간부가 금품을 받고 간접광고를 해 구속되기도 했다. "제1공영방송인 ARD가 체계적으로 은폐광고를 시도하고 있다"는 폭로까지 잇따르고 있다. 본 방송은 말할 것도 없고, 자회사 하나가 은폐광고로만 150만 유로(19억여원)를 벌어들였다는 것이다. 영국도 시끄럽긴 마찬가지다. 선데이 타임스는 지난 주 "공영방송 BBC가 규정을 어기고 간접광고를 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BBC는 즉각 조사에 착수했다. 간접광고가 허용된 미국에서도 논란은 한창이다. 뉴욕 타임스는 2일 "TV가 간접광고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광고주들이 대본까지 좌지우지할 정도가 되면서 스토리가 왜곡되는 일이 빈번하다는 것이다. 지난달 27일엔 미국 TV 프로그램 작가들이 "지나친 간접광고로 프로그램의 질이 위협받고 있다"며 시위를 벌였다.

◆ 원칙이냐 방임이냐=유럽의 많은 상업 방송사는 광고와 관련된 규제를 대폭 완화할 것을 주장한다. 이들은 "뉴스.다큐 프로그램은 어쩔 수 없다 해도, 나머지 장르에서는 간접광고를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유럽 소비자단체(BEUC)들은 "방송 프로그램이 광고주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면 시청자들의 권리는 침해될 수밖에 없다"며 강경한 자세를 보인다. 스위스 등 일부 국가는 간접광고 허용으로 방송이 미국화되는 점도 우려한다. 독일 미디어 감독위원회 측은 여전히 "TV에서 간접광고는 최고의 해악"이라는 입장이다.

독일신문협회 등도 "미디어의 신뢰성을 해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다만 협찬사의 이름을 자막에 밝히는 '협찬고지'에 대해선 대부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간접광고라는 둑을 허물 경우 피해는 되돌릴 수 없다고 믿고 있다.

독일 예나 대학은 최근 "한 프로그램 사회자가 광고하는 과자가 그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에 93번 등장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법으로 금지해도 이 정도인데 허용하면 광고와 프로그램, 출연자와 광고 배우의 경계선이 무너진다는 게 유럽 국가들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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