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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참군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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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일본은 하사관, 독일은 장교가 유능했다. 그러나 미국은 장군이 훌륭했다'-제2차 세계대전의 당사국인 미국.일본.독일의 지휘관에 대해 전쟁사가들이 내리는 평가다.

즉 일본은 분대나 소대 단위의 소규모 전투에서, 그리고 독일은 중.대대급 전투에서 강했지만 미국은 장군들이 전쟁 자체를 승리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다분히 미국 중심적 평가라는 혐의(?)가 들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일리 있는 얘기다.

물론 일본과 독일에도 야마모토(山本五十六)나 롬멜 같은 훌륭한 제독이나 장군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아이젠하워.맥아더.패튼 같은 전설적 명장들의 그늘에 가린다. 역사는 언제나 승자를 먼저 기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명장들이 반드시 군인 정신의 귀감인 참군인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노장은 죽지않고 사라질 뿐이다(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는 명언을 남긴 맥아더의 경우는 둘이 일치한 케이스일 뿐이다. 이들 같은 반열은 아니지만 6.25때 미8군 사령관이었던 밴플리트 장군은 참군인의 전형으로 꼽힌다.

아이젠하워와 미 육사 동기인 그는 자신의 외아들을 한국전에 참전시켰다가 잃었다. 공군 대위였던 아들을 얼마든지 안전한 후방으로 배치할 수 있었지만 이를 거절했던 것이다.

5.16 이후 그저 보아온 게 정치군인들인 우리에게도 참군인은 있었다. 이종찬(李鍾贊)장군이 대표적이다.

1951년 육군 참모총장으로 부산 정치파동 때 이승만 대통령의 파병명령을 거부해 총장직에서 해임됐던 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3선개헌에도 반대했다. 끝까지 군의 정치개입에 반대하며 참군인의 외길을 걸었다.

얼마전 조용히 귀국해 화제가 됐던 이라크전의 승장(勝將) 토미 프랭크스 미 중부사령관이 엊그제는 육군 참모총장직까지 거절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정말 무인(武人)다운 결정이다.

90년대 초 그와 함께 한미연합사에 근무했던 황원탁(黃源卓) 독일주재 대사는 그에게 딱 두마디만 들었다고 한다. 뭔가 지시를 내리면 '옛서(Yes, sir!)'와 '던(Done. 알았습니다!)'외에 군소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어디 군인뿐이랴. 한 우물을 파며 직분에 충실하는 모습은 언제 어디서나 아름답다. 군인은 물론 검.판사, 변호사, 교수, 기자 등 모두가 정치를 하려는 우리 사회에선 더욱 그렇다.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