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 들어간 진로의 進路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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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진로의 자력회생을 위한 5년간의 화의절차가 막을 내리고, 곧 제3자매각이 이뤄질 전망이다. 14일 법원이 해외채권단인 골드먼삭스가 신청한 진로의 법정관리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진로가 이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 들고 나온 '외자유치 카드'도 사실상 무산된 셈이다.

진로가 법정관리로 가더라도 최대 9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는 브랜드 가치를 고려할 때, '참이슬'이 시장에서 사라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장진호 회장은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것은 물론 대주주 자리에서도 물러나야 할 처지에 놓였다.

한편 진로 노조는 이날 법원 결정에 반발, 무기한 생산 중단에 들어가겠다고 밝혀 소주시장에서 참이슬 품귀현상이 빚어질 전망이다.

제3자 매각 유력=진로의 총부채는 2조원(계열사 보증채무 등 잠재부채 포함)을 넘지만 자산은 1조5천억원대다. 그나마 자산 중 7천억원은 회수가 불투명한 상태다. 이대로 청산절차를 밟을 경우 채권자들에게도 유리할 것이 없다.

법원도 이원 관리인에게 전달한 지침에서 "진로의 운명이 외국계 채권자의 손에 넘어가거나 진로가 해체되는 것은 전혀 아니며 엄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재건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임직원과 이해관계자들에게 이를 널리 알려 하루속히 회사를 안정시켜 달라"고 당부했다.

이와 관련, 법정관리를 신청했던 채권단인 골드먼삭스는 "법정관리를 통해 현대에 매각된 기아자동차를 진로 처리의 이상적 모델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골드먼삭스는 오는 7월까지 주간매각사를 선정하고 10월까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과 실사 작업을 완료할 경우 내년 초 신주발행과 외부자금 유입으로 채무를 변제하고 회사정리절차를 종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누가 얼마에 살까=골드먼삭스는 그간 채권자들에게 진로의 가치가 최대 2조3천억원에 달한다고 호언해 왔다. 일본사업부문인 JML의 가치만 7억달러(약 8천4백억원)가량이라는 것이다. 이는 전체 가치가 1조원 미만이라는 국내 업계의 평가와는 상당한 격차가 있다.

국내업체들도 사내외 정보망을 동원해 법정관리인의 경영스타일과 품성을 파악하는 등 진로 인수전에 대비해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 업체 중 소주사업에 관심이 있고 진로를 인수할 만한 여력이 있는 곳으로는 롯데와 두산이 꼽힌다. 보다 적극적인 곳은 진로의 라이벌인 두산이다.

두산 관계자는 "진로의 가치는 7천억~8천억원선으로 본다"며 "부채조정 등을 통해 적정가격으로 조정될 가능성이 보이면 두산도 인수전에 참가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롯데 관계자는 "현재로선 아무런 검토도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롯데칠성은 한때 자사 소주를 제작해 시판에 나서기도 했지만 반응이 좋지 않아 사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진로의 덩치가 너무 커 인수 희망자들이 부담을 느끼고 있는 만큼 국내사업부문과 일본사업부문을 분리해 팔 가능성도 있다.

이럴 경우 국내부문은 소주시장에 밝은 국내회사에, 일본부문은 외국회사로 넘어갈 공산도 있다. 진로의 외자유치 협상과정에서도 주류회사 등 상당수의 외국계 자본이 일본사업부문 인수에 관심을 보였다.

진로는 항고 등 검토=진로 경영진은 법원 결정에 곤혹스러워하면서도 항고를 준비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진로 노조원 8백여명은 생산현장을 떠나 사흘째 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진로 관계자는 "진로의 사실상 주인인 채권자들의 의사가 전혀 반영이 안된 판결"이라며 "임직원과 노조가 법원 결정을 납득하지 못하는 분위기라 법정관리인이 오더라도 정상적으로 회사가 운영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진로의 차장급 이상 간부들은 이미 진로의 법정관리 수용에 대비해 일괄사표를 제출해 놨다. 법정관리에 따라 자리보장을 받지 못하게 된 임원급은 물론 일선 직원들도 구조조정의 가능성에 불안해 하고 있다.

조민근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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