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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난동 위험 수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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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해 8월 부산고등법원. 피고인 이모씨는 판사가 형량을 높게 선고하자, "내가 왜 (감옥에) 들어가야 하는데…"라며 욕설과 함께 판사가 앉아 있는 법대로 돌진했다. 교도관들에게 제지당한 그는 법정모욕죄로 추가기소됐다.

지난해 10월 청주지법 제천지원에서 피고인 이모씨는 재판 도중 법정 마이크를 집어던지고 판사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올 3월 서울 서부지법에서 한 피고인은 자신의 피해 상황만 진술한 채 "판사 마음대로 하라"고 소리쳤다. 올 6월 서울 남부지법 판사는 공용물건 손상 사건의 피고인에게 "재판 잘 해라"는 반말 훈계를 들어야 했다.

엄숙해야 할 우리나라 법정의 현 주소다. 지난해 9월 연쇄살인혐의로 재판을 받던 유영철이 법대 쪽으로 돌진하려다 제지당한 사실이 보도돼 국민들에게 충격을 줬다. 하지만 전국의 각급 법원에선 그다지 새로운 일이 아니었던 셈이다. 국회 법사위 소속 우윤근 열린우리당 의원은 6일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법정 난동 및 질서 문란 사고 사례를 공개했다.

◆ 판사한테 덤비고=지난해 7월 서울 북부지법에서 재판장이 사건 관련자 A씨에게 "당신은 법적인 대리 자격이 없으니 나가 있으라"고 하자 A씨는 허리에 손을 올린 채 "판사면 다냐"고 대들었다. 같은 달 수원지법에선 재판장이 항소를 기각하자 피고인이 "××"라고 욕하며 출입문을 걷어찼다. 피고인은 감치(監置.재판장의 명령에 의해 일시적으로 구금되는 것) 20일의 처분을 받았다. 지난해 2월 인천지법에선 형을 선고받고 나가던 피고인이 "에이씨, 이게 무슨 재판이냐"고 소리 질렀다. 같은 곳에서 올 4월 유죄를 선고받은 피고인이 재판장에게 거친 욕설을 퍼붓고 난동을 부려 감치 10일 명령을 받았다.

방청인들의 소란 행위도 심각했다. 올 4월 서울 남부지법에서 집시법 위반 사건을 지켜보던 한 방청인은 재판장의 경고를 무시하고 "당신이 뭔데 우리를 재판하느냐"며 소란을 피우다 영등포 구치소에서 10일을 보내야 했다.

◆ 사건 관계인끼리 치고받고=지난 3월 서울 중앙지법 법정에서 피고인 측 방청인이 피해자에게 달려들어 쇠망치로 두 차례 머리를 가격하는 끔직한 일이 벌어졌다. 법정이 범죄 현장으로 변한 것이다. 올 4월 서울 동부지법 법정에서 B씨는 증인으로 출석한 부인이 이혼소송을 제기한 데 앙심을 품고 28㎝짜리 칼을 꺼내 부인을 찔렀다. 서울북부지법 이혼조정실에선 판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관련자 2명이 번갈아가며 뺨을 때려 재판의 위신을 훼손시킨 일도 있었다.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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