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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부업」의 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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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새벽의 초반준비에서 시작되는 주부의 가사노동은 하루 종일 끝도 없고 지루하게 매일의 반복만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가사노동자체가 생산작업이 아니어서 노동효과가 눈에 뜨이지도 않는다.
소비와 소모만 있을 뿐이라는 주부업, 그 값어치를 재검토해 본다.
얼마전 미국의「존 케네드·갤브레이드」교수가『여성의 가사노동은 그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어야하며, 따라서 GNP (국민총생산) 에 당연히 포함돼야한다』고 주장한바 있다.
그는 일반주부들의 연중가사활동을 돈으로 따지면 약 2만5천달러 (약1천7백50만원) 에 이른다고 말하고, 만일 이것이 GNP에 포함된다면 매우 많은 액수가 돼 주부들은 노동의 양에 따라 남편의 수입을 나누자고 제의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 연초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럼비아주 최고법원에서는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남편에게 아내의 가사노동가치를 5만달러 (약3천7백50만원) 로 산정, 가해자측에 이를 배상토록 지시했다.
도 일본의 보험회사에서는 주부업의 가격을 한달 평균 15만엔 (약46만원) 으로 잡아 교통사고 보험금 계산때 사용하고 있다.
김재은교수 (이대·교육심리학과 과장) 는 주부업을 돈으로 따질 때 다음과 같은 사항을 참고로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아기를 임신·분만·보육하는 보모, 아기의 건강과 안전을 돌보는 간호원, 자녀에게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맛있게 조리해서 제공하는 영양사와 조리사, 자녀의 유아원 유치원 과정을 맡아서 가르치는 유치원 교사, 자녀의 학교공부를 돌보아주는 가정교사, 자녀의 중고등학교 과정 생활지도를 하는 교도교사(카운슬러)집안의 사무적인 처리를 맡아보는 재산관리인, 집안의 경영을 맡아보는 집사, 그리고 아내노릇·어머니노릇·며느리노릇하는 복잡한 인간관계를 처리하면서 가사를 원만하게 운영하는 조직공학자 (시스팀 엔지니어)등이다.
어느 주부도 이같은 직업의 면허장을 다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가사를 돌보며 이 모든 역할을 모두 훌륭히 해내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최저임금으로 따지더라도 우리나라 주부의 월 노동량은 60만원 값어치에 해당한다는 것이 김교수의 계산이다.
주부업이 과학적 예술이라고 전제한 김교수는 주부에게는 이같은 기능적 직무 외에도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귀중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박혜경교수 (숙대·가정경제학)는 주부의 가사노동을 금전으로 환산할 때 현실적으로 그 수준이 너무 낮아진다고 했다.
파출부를 고용할 때 하루임금은 5천원(아침 9시∼저녁 6시까지), 월 15만원의 수준에 머무른다. 주부업을 금전으로 따지면 이처럼 그 가치가 낮게 평가될 수 밖에 없다.
1년전 중학교사직을 그만 두고 집에서 살림을 하는 정순임씨 (35) 도 가사노동을 돈으로 따지면 모든 여성이 집에 파출부를 두고 나가 직장에서 돈을 벌어 오는 면이 훨씬 이익이라고 했다.
직장에 다닐 때 파출부를 무고 일했던 정씨는 자신이 가정에 들어 앉음으로 해서 금전적인 이익은 줄어들였지만 유형무형의 이익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했다.
주부가 건강하면 가정이 건강하다고 말자는 박교수는 수부의 일이나 휴식은 곧바로 다튼 가족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이므로 그 값어치를 정신적인 것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가전제품의 발달로 아무리 살림이 쉬워졌다고는 하나 요즘 주부의 일은 옛날보다 줄어든 것 같지 않습니다. 살림하기가 편리해진 대신 집안의 사무처리나 살림경영 가족오락 사교등 옛날 주부들에 게 부여되지 않았던 일들이 오늘의 주부에게 주어지고 있어요. 때문에 가사란 집안식구 전체가 골고루 참여하여 처리해 내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육체노동을 필요로 하는 가사는 남편과 자녀들이 모두 참여해야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주부 김경숙씨(38)는 아내와 어머니로서 살림 모두를 관장하고 있으면서 청소 설겆이·세탁등 노동을 남편과 자녀들에게 분담시키고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가사노동의 신성함을 인식해야 하고 그 가치를 인정토록 해야한다는 것이 주부 김씨의 의견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의 남편은 가사를 그다지 돕지 않는다.
81년 중앙일보 문화부에서 행한 한국 주부 의식조사를 보면 집안 일을 거의 돕지 않는 남편이 23.5%에 가까왔으며 42.4% 정도가 못을 박고 전키를 고치는 정도였다.
식사준비까지 해준다(5.6%) 거나 집안 청소를 한다(19.5%), 아이를 봐준다(9%)는 비율은 아직 낮다.
주부 김청자씨 (41) 는 가사노동의 귀중한 가치를 가족 구성원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면에서 도 중요시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건전한 가정이 건전한 사회를 만든다는 의미에서도 건전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주부에게 소중한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현대에 접어들어 주부업마저도 돈으로 환산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주부업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무한한 그 무엇이어야 한다. <김징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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