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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맨이 되길 요구하는 대학 입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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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성탁
사회부문 차장

①가군 서울대와 나군 고려대·연세대에 복수지원이 가능한가. ②연세대 의예과에 떨어진 수험생이 서울대 의예과에는 합격할 수 있을까. ③연세대 의예과 최초합격자 발표에서 수능 만점자 세 명이 떨어지고 비(非)만점자 다수가 합격한 이유는 뭘까. 올해 대입 정시모집과 관련한 질문이다. 답은 이렇다. ①수험생별로 다르다. 사회탐구는 한국사를, 과학탐구는 적어도 II과목 한 개를 응시해야 서울대에 지원할 수 있다. ②가능하다. 연세대는 수능 90%와 학생부 10%로 뽑지만 서울대는 수능 100%에 인·적성 면접으로 결격 여부를 판단한다. ③생명과학II에서 한 문제 틀린 수험생의 변환표준점수가 과탐 다른 과목 만점자보다 높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골치 아픈 질문을 던진 건 요즘 대입이 얼마나 복잡한지 소개하기 위해서다. 고3 수험생 부모라면 ①②번은 알 수도 있겠지만 ③번은 답을 봐도 이해하기 어렵다. 대입을 안 치러본 학부모에겐 모든 질문이 난수표다. 정시에선 수능으로 결판나는 줄 알았는데 올해는 수학·영어가 너무 쉽게 출제되면서 과학탐구 선택 과목에 따라 유불리가 갈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수험생과 학부모 사이에 “수능이 로또가 된 거냐”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수시모집까지 감안하면 요즘 대입은 불확실한 영역이 되고 말았다. 정부가 간소화했다는 수시 분류만 꼽아도 고교 내신 위주 학생부 교과전형, 동아리·진로활동 등을 보는 학생부 종합전형, 논술전형, 특기자전형으로 나뉘는데 어떻게 해야 합격할지 알 길이 없다. 상위권 대학에서 비중이 늘고 있는 학생부 종합전형은 교내 활동만 본다는데 학교에 개설된 동아리는 턱없이 부족한 곳이 많다. 고교에서 정규수업으로 가르치지 않는 논술을 보는 전형에서 뭘 잘못 써서 떨어졌는지 대학 측은 알려주지 않는다. 이런 불안은 컨설팅 업체나 논술학원의 배만 불린다.

 대비법을 알 수 없으니 수험생은 모든 전형을 겨냥할 수밖에 없다. 내신 잘 받고 교내 수상 실적이나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해야 하며 논술과 수능 공부를 병행해야 한다. 그런데 수학만 해도 학교 시험에 나오는 문제와 수능 대비용 학원 공부가 다르고 EBS 교재는 별도로 풀어야 한다. 한마디로 수험생이 수퍼맨이 돼야 통과할 수 있는 제도다. 만능이 되려고 고교 시절 발버둥을 쳐온 수험생들은 수능에서 실수라도 하면 억울해하며 재수를 택하고 있다.

 문제는 심각하지만 대입의 바람직한 방향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역대 정권과 교육부 관료들이 계속 바꿔온 대입 정책의 꼬임이 이미 너무 복잡해져 있기 때문이다. 우선은 수능 주요 과목에서 적절한 변별력을 확보하는 게 시급하다. 정시에서라도 운으로 당락이 갈린다는 불안은 없애줘야 한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 수능의 성격을 어떻게 가져갈지, 어느 선까지 입시를 대학 자율에 맡길지 등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정말 아이 키우기엔 힘든 곳 같아요.” 그래야 이런 학부모들의 원성을 달래줄 수 있다.

김성탁 사회부문 차장